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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The Body Electric

생명과 전기 #010

우리는미생물 2024. 2. 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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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성장과 재성장

제2장 재생의 원동력

생명 전기

지금까지 언급한 성과들이 1958년 내가 패턴 조절과 아체 유도 요소를 찾기 시작했을 때 참고로 할 수 있는 토대였다. 당시에 우리는 재생이 안되는 동물에게 재성장을 유도하는 두 가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잉여 신경과 잉여 상해傷害였다. 그것들은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실마리를 갖다 주었다.

나의 연구는 소련의 처음 몇 개의 스푸트니크 로케트들이 우주로 쏘아 올려진 직후, 미국의 '로케트 소동'이 한창일 때 시작되었다. 우리가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떤 소련 기술의 예기치 못한 승리에 놀라서, 정부는 허겁지겁 소련의 모든 과학잡지를 번역하여 연방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연구소들에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가 일하고 있던 시라쿠즈의 재향군인국 의학 센터의 도서관은 임상 의학과 생물학에 관한 소련 잡지들을 매달 한 꾸러미씩 받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도 거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노다지는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곧 두 가지를 발견했다. 소련인들은 훨씬 낭만적이었다. 연구자들은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매우 기이한 실험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우리에게는 대개 생소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소련의 잡지들은 그것들을 기사로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특히 <바이오피지카Biofizika>지를 즐겨 보았는데, 그것은 생물물리학Biophysics에 관한 잡지였다. 나는 거기에서 모스크바의 로모노소브 주립대학의 시뉴킨의 논문 <식물 재생 과정에서의 생물전기>를 만났다.

시뉴킨은 일단의 토마토 줄기들에서 각각 가지 하나씩을 잘라 내는 것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다음에 그는 각각의 잘라 낸 부분 주위의 전기를 측정했다. 그는 처음 며칠 동안 절단 부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陰 전류를 발견했다. 비슷한 '상처 치료 전류'가 모든 동물의 상처로부터도 방출된다. 둘째 주일 동안, 절단 부분이 굳어지고 새로운 가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전류는 좀 더 강해지고 그 극성을 양陽의 방향으로 바꾸었다. 전류의 극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종종 전극에 대한 측정 전극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전류의 극성이 결정된다. 그보다는 회복과 성장에 관련된 듯한 전류의 '변화'를 발견한 것이 뜻깊은 것이다. 시뉴킨은 또한 이 전기적 현상과 생화학적 변화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양 전류가 증가함에 따라 그 주변의 세포들은 신진대사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졌고, 또한 더욱 산성으로 되어 이전보다 많은 비타민C를 생산했다.

다음에 시뉴킨은 조그만 배터리를 사용하여 재생전류를 증대시키기 위한 추가 전류를 새로 가지를 친 일단의 식물들에 흘려 보았다. 이 배터리의 지원을 받은 식물들은 지원을 받지 못한 것들보다 3배까지 빨리 가지를 회복했다. 전류는 매우 미약한 양으로 5일 동안 겨우 2㎂ 내지 3㎂였다. 더 강한 전류는 오히려 세포들을 죽여서 성장 자체를 멈추게 했다. 극성 또한 들어맞아야 했다. 식물 자체의 전류를 감소시키는 반대 극성의 전류를 사용했을 때는 회복이 2 내지 3주 지체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생물학자들에게는 이 모든 말이 어불성설이었다. 왜 그런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과거를 돌아보기로 하자.

볼로냐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수였던 루이지 갈바니는 20년 동안 전기에 대해서 연구한 바 있었다. 그는 1794년 처음으로 상처 치료 전류를 발견했는데, 불행스럽게도 자신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 생물학의 주된 관심사는 생기론과 기계론 간의 논쟁이었다. 생기론은 선사시대 이래 전세계를 통하여 우세한 개념이었고, 거의 모든 종교의 근본을 형성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개념인 초자연적 '형상' 또는 '이데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모든 유형의 물체와 생물들이 거기서부터 그들의 개별적 특성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생명의 진수로서 영혼anima을 가정하여 이 생각을 도입했다. 플라톤의 생각은 중세 실념론(개념실재론) 철학으로 발전되었는데, 그 주된 교리는 추상적 보편 원리들이 감각적 현상들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것이다. 기계론은 훨씬 덜 사변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에서 성장했다. 그는 보편 원리들은 실재적이며 감각을 통해 파악되는 실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인간의 시도에 붙여진 이름들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계론은 데카르트의 저술들을 통하여 과학의 기초가 되었는데, 그 조차도 시초에 기계에 생명을 주는 '생명력 vital spark'을 믿었다. 갈바나의 시대까지는 기계론의 영향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었다.

갈바니는 헌신적인 의사였고, 의학은 유사 이래로 '생명의 신성함'이란 생기론적 개념에 기초를 둔 직관과 경험적 관찰의 혼합물이 되어 왔다. 생기론자들은 오랫동안 이렇다할 성과 없이 특이하고도 무형적인 현상인 전기와 생명력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다. 이것이 갈바니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난간에 줄을 지어 매달아 놓은 개구리들의 다리가 바람이 불어 철골에 닿을 때마다 팔딱거린다는 것을 감지했다. 동시에 그의 아내 루시아는 그의 실험실에서, 저쪽 편의 전기 기구가 작동하여 스파크를 내는 순간 조수가 우연히 외관용 철제 메스로 개구리의 주신경을 건드렸을 때 개구리 다리의 근육이 수축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당시 알려진 전기의 유일한 형태는 정전기로서 여러 가지 물질의 마찰에서 생기는 스파크가 주요한 모습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스파크에 의해 발생된 전파 또는 전기장이 메스에 순간적인 전류를 일으켜 근육을 자극하게 되었음을 알지만, 갈바니는 금속제 난간과 메스가 신경 속에 숨어 있던 전기를 끄집어 낸 것이라고 믿었다.

갈바니는 수 년 동안 여러 종류의 금속으로 회로를 바꾸어 가면서 개구리 다리의 신경에 대해서 실험했다. 그는 점점 생명적 영혼이 신경을 통해 흐르는 전기라고 확신하게 되어 1791년 이것을 볼로냐 과학아카데미에 발표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안 되어 파두아 대학의 물리학자였던 알레산드로 볼타는 갈바니가 사실은 스파크가 아닌 새로운 종류의 전기, 즉 전류를 발견한 것이라고 증명했다. 그는 2종 합금bimetal 직류 전류를 발생시켰는데, 그것은 두 금속 사이의 전자의 흐름이었다. 그것은 유명한 갈바니의 발코니 관찰에서 구리 고리와 철제 난간이 전도 매체에 의해 연결된 것, 즉 다른 말로 배터리와 같은 것이었다. 묽은 소금 수용액의 자루로 볼 수 있는 개구리의 다리가 전도체 또는 전해질이었던 것이다. 볼타는 갈바니가 말한 '동물전기' 같은 것은 거기 없었다고 주장했다.

싸우기 싫어하고 소심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갈바니는 그냥 당하고 말았다. 그의 유일한 응답은 1794년 익명으로 논문을 하나 낸 것이었다. 이 논문에서 그는 금속 없이 개구리의 다리를 팔딱거리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실험을 소개했다. 그 중 하나는, 실험자가 개구리에게서 끄집어낸 척수를 한 다리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이때 발생하는 전류는 절단 부분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진정한 동물전기였다.

결국, 갈바니는 기계론자들에게 공격할 거리를 줌으로써 부지불식간에 그들을 도운 셈이 되었다. '생명력'이 덧없는 것인 한, 말할 수 있는 것은 찾을 수 없다는 것뿐이다. 갈바니가 그것이 측정 가능한 전기라고 말한 이상, 실험을 할 수 있는 실체가 있었다. 지질학의 토대를 세운 탐험가 겸 박물학자인 훔볼트는 1797년에 볼타와 갈바니가 모두 부분적으로는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2종합금 간의 전류도 사실이었고, 상처로부터 생기는 자체 전류도 그러했다. 그러나 기계론자들이 여전히 우위에 있었다. 갈바니의 익명 논문과 훔볼트의 확인은 간과되었다. 갈바니는 1798년 빈털터리 상태로 상심한 채 죽었는데, 그것은 그의 집과 재산이 프랑스의 침입에 의해 몰수된 직후였다. 반면에 볼타는 나폴레옹의 후원 아래 축전지를 개발하면서 점점 더 유명해졌다.

그 후 1830년대 피사의 물리학 교수였던 카를로 마테우치는 새로 발명된 아주 미소한 직류 전류를 측정할 수 있는 검전기를 사용하여 동물 전기에 대한 또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 35년간 계속된 일련의 꼼꼼한 실험들을 통하여, 상처의 전류가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경 속에서가 아닌 단지 상처 표면에서 발산되는 전류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을 생명력과 분명히 관련지을 수는 없었다.

1840년대 베를린의 생리학도였던 레몽은 마테우치의 연구를 읽고 또 하나의 발전을 이루었다. 레몽은 신경을 자극했을 때 임펄스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임펄스를 전기적으로 측정했고 그것이 전선 속의 전류와 같이 '전기를 발생시키는 입자들'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갑자기 자기에게 떨어질 영광을 기대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물리학자와 생물학자들의 백 년간의 꿈이었던 신경 원리와 전기와의 동일성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라고 그는 술회했다. 그러나 그는 잘못 생각했었다. 얼마 안 있어, 임펄스는 전류라기에는 너무 천천히 움직이며 신경은 어떻게든 그것을 전도시킬 만한 절연성이나 저항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측정된 작은 임펄스 크기의 어떠한 진정한 전류도 짧은 신경조차 통과해 흐르지 못한다.

레몽의 총명한 제자였던 줄리어스 번스타인이 '작용 전위'를 가정함으로써 1868년에 이 난국을 타개했다. 번스타인은 임펄스가 전류는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세포막의 이온적 성질의 교란이며 이 교란(상태)이 신경섬유를 통하여 전달된 것이었다.

번스타인의 가정은, 서로 다른 전하를 띤 이온들을 세포막이 세포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선택적으로 거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온은 소금이 물 속에 녹아 들어갔을 때 생기는 전하를 띤 입자. 예를 들면 소금은 나트륨 양이온과 염소 음이온으로 나누어진다.) 번스타인은 세포막이 대부분의 음이온을 바깥쪽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양이온을 섬유 안쪽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포막이 양극화된 것이었다(같은 전하끼리 한쪽에 모였기 때문에). 따라서 세포막 간에 전위가 발생하여 한쪽으로 몰린 음전하들이 균형을 이루기 위하여 세포막을 지나서 전류의 형태로 흐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의 신경이 자극될 때마다 세포막의 작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세포막의 일부는 탈분극화되어 세포막간 전위를 역전시킨다. 신경 임펄스는 사실상 세포막을 따라 이동하는 전위의 교란 상태였다. 교란 상태가 지나가면 세포막은 재빨리 정상적인 정지전위 상태로 회복되었다. 따라서 신경 임펄스는 전류가 아니며, 다만 그것이 전기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번스타인의 가정은 모든 중요한 면들에 있어서 확인되었다. 그런데 아무도 무엇이 세포막에 저 모든 이온들을 앞뒤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지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가정으로 남아 있다. 하여간에 곧 그것은 상처 치료 전류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모든 세포들이 세포막간 전위를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상처를 입은 세포의 세포막들이 단지 그들의 이온을 주위로 흘려 보내는 것이라고 번스타인은 주장했다. 따라서 상처 치료 전류는 더이상 전기가 생명의 핵심이라는 증거가 못되며, 세포의 손상에 따른 부작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전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던 생기론자들은 전기가 몸에서 하나씩 제거됨에 따라 점점 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들의 마지막 입지는 신경전달체의 발견이었다. 그들은 교신하는 신경 사이의 간격인 시냅스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전류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20년에, 나중에 나의 모교가 된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의 연구교수였던 오토 뢰비의 멋진 실험에 의해 그 생각은 오류로 판정되었다. 내가 거기서 1학년 때 생리학을 수강했을 때, 우리는 이 실험을 반복해야 했다.

생물학자들은, 개구리의 심장에서 신경을 제거하고 적당한 용액 속에 두었을 때 며칠 동안 박동을 계속한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다. 신경들 중의 하나를 자극하면 박동이 느려졌다. 뢰비가 했던 것처럼, 우리는 신경이 붙어 있는 심장을 가지고 그 신경을 자극하여 박동을 느리게 했다. 다음에 우리는 심장을 담갔던 용액을 모아 거기에 다른 심장 하나를 집어넣었다. 억제신경이 자극되지 않았는데도 박동이 느려졌다. 명백히 신경은 화학물질을 생산하여 심장의 박동을 느리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신경 말단과 근육섬유 사이의 간격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화학물질은 나중에 아세틸콜린이라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뢰비는 이 발견으로 1936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업적은 전기적 생기론의 마지막 보루를 붕괴시켜 버렸다. 그 후로, 신경계의 모든 기능은 번스타인의 가정과 시냅스를 경유한 화학적 전달을 기초로 하여 설명되었다.

그러므로 상처 치료 전류의 세기가 식물의 재생에 영향을 끼쳤다는 시뉴킨의 보고를 내가 믿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의 보고는 상세했고 조심스럽게 쓰여져 있었다. 그가 옳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사용한 토마토가 미국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것들 중에서도 '최고'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때 나는 마테우치의 업적을 모르고 있었지만, 로즈와 폴레자에프의 실험을 연구함에 따라 무엇인가 뇌리를 스쳤다. 양자 모두에 있어서, 폴레자에프에 있어서는 확실히, 로즈에 있어서는 아마도, 상처의 확대에 의하여 재생이 자극을 받은 것이었다.

다른 한 소련인이 시기적절하게 선구적인 연구를 했다. 정부 번역물에서 나는 레닌그라드 세포학 연구소 지르문스키의 1958년 논문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황소개구리 뒷다리 근육의 상처 치료 전류를 연구한 것이었다. 이 근육은 부드럽고 길어서 다루기 쉬웠고, 몇 종류의 다른 신경들의 가지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각 근육에 일정한 상처를 내어 상처 치료 전류를 측정했고, 다음에 신경의 가지들을 하나씩 잘라가면서 전류의 변화를 관찰했다. 신경을 절단해 감에 따라 전류는 감소했다. 상처 치료 전류는 신경의 양에 비례했던 것이다.

나는 곧 도서관으로 달려가 신경생리학의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하여 앞서 언급한 마테우치의 빛나는 업적을 발견했다. 그는 상처 치료 전류가 실재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처의 크기에 비례하여 변한다는 것까지 입증했던 것이다. 이젠 나는 퍼즐을 완성하기에 충분한 조각들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 상처의 크기가 재생 능력에 비례한다.
  • 신경의 양이 재생 능력에 비례한다.
  • 상처의 크기가 상처 치료 전류에 비례한다.
  • 신경의 양이 상처 치료 전류에 비례한다.
  • 그러므로 상처 치료 전류는 재생 능력에 비례한다.

당시의 일반적인 '지식'과는 상반되게, 나는 이제 상처 치료 전류가 부작용이 아니고 성장 통제와 역분화 유도 요소들의 열쇠를 찾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첫번째 실험을 계획했다.

 

생명과 전기 #011

제1부 성장과 재성장 제3장 기적의 가능성 진실된 과학은 회화, 조각, 문학 같은 것들만큼이나 창조적이다.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 미美는 예술의 판단기준이며, 마찬가지로 훌륭한 이론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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