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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쑥뜸요법, 영구법(靈灸法)> 김윤세著
이 책은 인산 김일훈 선생이 창안하신 '영구법'이라는 뜸법의 효과와 실행 방법, 실제 병증에 적용하는 방법과 치료 사례 그리고 체험자들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근래 구당 김남수 선생께서 TV에 출연한 이후 뜸에 관한 관심이 전 국민적으로 높아졌는데, 김일훈 선생의 영구법과 비교하자면 김남수 선생의 뜸법은 쌀알 반만한 뜸을 다양한 혈자리에 뜨는 반면, 영구법은 5분 이상 타는 대형 뜸을 주로 중완과 단전, 족삼리에 뜨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것입니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뜸불이 직접 살갗에 닿도록 하는 직접구라는 것.
영구법은 뜸불을 살갖에 직접 태우는 직접구법이다. 타는 시간이 5~30분에 이르는 대형 뜸장을 쓴다. 그 사람의 나이와 병증, 체력 등을 고려하여 적게는 몇 십장에서 많게는 수천여장까지 뜨도록 하는 뜸법이다. 뜸불의 온도는 대략 섭씨 700도가 넘는다.
김일훈 선생께서 일제시대 고문후유증을 자가 치유하신 경험담.
“나는 왜놈 손에서 뼈가 가루 되다시피 된 사람인데, 그 당시에 송장이라도 광복되면서 바로 나와서 아는 친구 집에 가서 신세지면서 단전에다가 5분짜리부터 15분짜리까지 뜨는 걸 1년에 5천 장씩 뜨니까, 전신이 얼어 가지고 음식을 먹으면 생쌀이 소화되지 않고 설사만 하던 사람이 5천 장을 뜨니까, 다소 소화가 되고 밥맛이 돌아와요, 그 다음에 1만 장을 뜨니까 완전히 수족이 더워져요. 1만 5천 장을 뜨니까 성한 사람이 돼요. 그래서 만주에서 발이 다 얼어 없어지고 발가락이 없어진 사람이 지금은 발가락이 제대로 나와 있어요. 발톱은 아직도 제대로 나온 거 없지만 발가락은 제대로 돼 있어요. 그러면 뜸이 좋다는 사실을, 그래서 앉은뱅이나 꼽추나 이런 사람들이 한 30년 전에 내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병신이 된 사람이 오늘까지 하나 없어요.”
뜸의 효능
백혈구는 뜸을 뜬 2시간 뒤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48시간 계속된다고 한다. 아울러 식균작용이 배가되고 적혈구와 혈소판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험에 따르면 적혈구는 뜸을 뜬 6주일 뒤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약 반 년 동안 지속되며 증가율은 20%로 나타난다. 출혈성 질환에 뜸을 뜨면 혈액응고 시간이 3분의 1로 단축되고 면역력도 강해진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뜸은 혈당량, 칼슘, 칼륨 등을 증가시키고 위장관의 윤동운동과 소화액 분비를 항진시키며 내분비 계통을 강화시켜 준다고 한다.
영구법으로 뜸 뜨는 방법
1. 찬 바람이 들어 오지 않는 따뜻한 공간에서 뜸을 뜬다.
2. 뜸장은 위쪽이 뾰족하고 아래쪽이 평평하도록 원추형으로 만드는데, 송편 빚듯이 손으로 만들거나 두터운 종이로 깔대기 모양을 만들어서 거기에 쑥을 넣고 손으로 꾹꾹 누르면 된다. 이렇게 만든 뜸장은 대략 5분 이상 타는 것인데, 이것을 중완, 단전, 족삼리 등의 혈에 올려 놓고 불을 붙인다. 불이 막 타들어갈 무렵에는 약간 따뜻함을 느끼는데, 거의 다 타 뜸장이 불덩이로 변할 때면 뜨거움의 고통이 몹시 크다.
3. 이렇게 한 장의 뜸장이 다 타면 그 곳에 재가 쌓인다. 그러면 그 재를 밀어내고 다시 새 뜸장을 올려 놓고 태운다. 뜸을 두세 장 뜬 뒤에는 재를 치우고 다시 뜬다.
4. 뜸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뜬느 것이 원칙이다. 반대로 올라가며 뜨면 열이 뇌로 올라가기 때문에 위험하다. 남자는 왼쪽부터, 여자는 오른쪽부터 불을 붙인다.
5. 뜸이 타들어 가는 중간에 뜨거움을 못 참고 뜸불을 치워내면 다시 뜨기가 힘들다. 첫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6. 뜸 뜨는 도중이나 뜸 뜬 뒤에 뜸자리에서는 진물, 고름, 죽은 피 따위가 흘러 나올 수 있다. 이를 화장지로 닦아낸다. 뜸 뜬 다음날에도 뜸자리에서 분출물이 나오기 때문에 뜸자리에 가제를 대고 복대를 두르고 활동하는 것이 좋다.
7. 뜸이 전혀 뜨겁지 않은 상태가 오면 이 때는 밤낮을 가리지 말고 마구 떠야 한다.
8. 뜸을 뜨는 중에 머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거나 가슴이 몹시 답답하거나 또 눈이 극심하게 충혈되고 고름이 끼면 화독이 미친 증거이므로 즉시 뜸뜨기를 중단하고 고약을 붙여야 한다.
9. 뜸 뜨는 도중 또는 다 뜨고난 뒤에 몸 곳곳에 통증이 올 수 있다. 특히 수술한 곳이나 다친 곳에는 어김 없이 통증이 온다. 이는 쑥불 기운이 병균을 죽이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현상으로 좋은 징조이니 걱정할 것 없다.
10. 몸에 가려움증과 피부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큰 부작용은 아니다. 절대 약물치료를 해서는 안된다. 연고를 바르거나 양약을 복용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대신 몸을 깨끗이 씻고 당처에 죽염수를 발라주면 며칠 지나 가라 앉는다.
11. 뜸 뜨는 도중 현기증이 올 수도 있다. 이 때는 죽염의 양을 늘려 먹으면서 뜸을 뜬다.
12. 혈액형이 진성 O형인 사람, 즉 인삼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람은 150장 이내로 뜨는 것이 좋다.
13. 폐암 환자는 뜸을 뜨다가 각혈을 하는 수가 있다. 각혈할 시 뜸을 일시 중단토록 하고, 각혈하지 않도록 알맞게 뜬다.
영구법의 마무리와 금기사항
일정 기간(자신에게 알맞을 만큼) 동안 뜸을 뜬다. 뜸을 다 마친 뒤에는 뜸자리에다 고약을 붙인다. 고약을 붙이면 그 자리로 진물, 고름, 죽은피 따위가 흘러 나온다.
그것들은 약쑥불의 극강한 영력을 만나 허물어진 병균들의 잔해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나 대개 소줏병으로 반 병 가량 흘러 나온다. 고약은 한 번 배출물을 뽑아 낼 때마다 갈아붙인다. 불순물을 다 빨아내는 데 거의 1통(200장)의 고약이 소모된다. 고약을 붙이는 기간은 보름 이상이며 길게는 두달 정도 걸린다. 뜸 뜬 자리에서 새살이 돋아나면 고약 붙이기를 중지한다.
이렇게 뜸을 뜨기 시작해서 다 마치고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양,한약을 불문하고 일체의 투약, 주사를 금지한다. 부부관계를 금한다.
술, 닭, 돼지, 오리, 개 등의 육류와 오이, 생선회, 굴, 젓갈류, 계란, 밀가루음식, 모밀, 상한 음식 등을 금한다. 영구법은 암, 백혈병, 당뇨 그밖의 어떠한 난치성 질환도 틀림 없이 제압하는,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다. 죽음 직전에 몰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산 선생의 가르침대로 영구법을 실천하여 부작용이 있었다거나 병세가 진정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단전뜸으로 정신력 기른다
정신력을 드높이기 위한 영구법은 역시 단전뜸이다. 영구법의 방법으로 단전에 뜸질을 하면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누구든 단전뜸을 하면 뜸불로 인한 심한 고통을 겪게 되고, 그 고통을 이겨내려 몸부림치다 끝내 순순히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자세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일체의 번뇌망상과 잡념 또한 사라진다.
그 때가 되면 사람은 수행자처럼 정신 집중 상태로 몰입하게 되어 아랫배 부위에 시원하고 훈훈한 미묘한 감촉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하단, 즉 생명의 근원인 단전에서 도가 이루어지는 최초의 조짐이다. 이 상태가 되면 한동안 자신의 존재마저 잊은 채 삼매의 깊은 경지에 들어 묘한 희열을 맛보게 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처음 영구법을 하는 사람도 뜸을 뜨는 도중에 이러한 상태를 곧잘 경험하게 된다. 영구법을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이러한 ‘무아경’을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꾸준히 하다보면 거의 체험하게 된다.
이 단계를 거쳐 계속 뜸을 떠 12년 이상 지나면 도가 중단에 이르게 된다. 이때가 되면 심장부가 완전히 밝아져 본래의 마음이 열리고 광명을 되찾게 된다.
영구법 수행의 최종 단계는 상단에서 도가 열리는 것이다. 아직 필자도 이 단계를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인산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는 태양광명보다도 더 밝은 혜(자연계의 법칙과 사물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는 지혜를 뜻함)가 극에 달해 덕을 닦으면 덕의 혜택을 받고 복을 많이 지으면 운의 혜택을 받게 된다고 한다.
영구법의 치병 원리
영구법의 방법대로 뜸을 뜨면 신비한 약쑥 기운이 뜸을 통해 체내에 들어가고, 높은 온도의 힘으로 12뇌까지 올라갔다가 온몸의 말초신경을 돌아 다시 뜸뜨는 부위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12뇌와 혈관, 골수, 근육 속에 자리잡고 있던 온갖 병독들은 약쑥의 조화력과 뜸불 온도의 힘에 밀려 쫓겨 다니다가 결국 뜸뜨는 자리로 밀려 나와 극강한 뜸불의 화독에 전멸하고 만다.
영구법을 하면 뜸 떴던 자리로 고름, 진물, 죽은 피 따위가 어김 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은 쑥뜸의 힘에 의해 전멸된 병독의 잔해들이다. 이렇게 하여 인체 내의 병독들을 소멸시키면 혈관 속의 죽은 피가 산 피로 바뀌게 된다. 곧 청혈 작용이다.
영구법은 언제 하는가
봄 - 입춘~입하, 최적기는 우수~춘분의 45일간이다.
가을 - 입추~동지, 최적기는 처서~추분의 45일간이다.
영구법을 체대로 하자면 3달 정도가 걸린다. 실제 뜸을 뜨는 기간은 30~50일 정도이나 영구법을 위해 몸을 만드는 기간, 뜸 뜨고난 뒤의 마무리 기간까지를 포함하면 90~100일 정도다.
영구법 시작 일주일 정도 전부터 하루에 30분씩 머리 속에 타오르는 쑥불의 영상을 그리며 온 몸의 힘을 빼고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해보자. 마치 화두를 참구하는 선승이 안거에 들어가듯이. 그렇게 하면 영구법을 대하기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영구법 핵심 뜸자리 네 곳
특별한 병증이 없는 사람은 단전에 뜸을 뜨면 된다. 다리 관절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통증이 오는 당처나 족삼리에 뜸을 뜬다. 난치병 치료의 목적으로 뜸을 뜨는 사람은 이 책을 보고 해당 뜸자리를 잡아야 한다.
○ 중완 : 배꼽 테두리로부터 위로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 4개를 포갠 길이 만큼 떨어진 지점 (검상돌기와 배꼽 중앙).
○ 단전 : 배꼽 테두리로부터 아래로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 3개를 포갠 길이 만큼 떨어진 지점.
○ 족삼리 : 슬개골 밑 손가락 3개(검지,중지,약지)의 지점으로 똑바로 누워 무릎을 세워 장단지와 허벅지 사이의 각도를 60도로 굽혀 전면을 눌러 올라가다 보면 손이 멈춰지는 곳.
○ 그 밖의 뜸자리 : 전중, 견우, 곡지, 환도, 백회, 기해, 건리, 수분, 중극, 식두, 은백
뜸장 수
나이가 많을수록 뜸을 적게 뜨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 반대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체 각 기관의 기능이 약해지고 체내에 공해독이 많이 쌓이므로 뜸장을 많이 떠야 한다.
연령별 | 뜸장수 |
40세 이전 | 150~300장 |
41~50세 | 500장 |
51세 이상 | 1,000장 |
70세 이상 | 2,000장 |
꼭 위의 분량만큼만 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뜸을 뜨다가 무통증 상태가 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뜨는데, 그러다가 다시 뜨거운 상태가 오면 뜸장 수가 몇장이든 무조건 뜸 뜨기를 마쳐야 한다.
치료사례
음독자
음독자의 경우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 익사자의 경우 항문이 벌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영구법으로 소생시킬 수 있다. 사람이 완전히 죽은 상태는 몸 안에서 혼이 빠져나간 상태를 가리킨다. 심장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있거나 이미 멎었더라도 가슴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면 아직 혼줄이 몸 밖을 빠져 나가지 않았다는 증거이므로 재빨리 손을 쓰면 가망이 있다.
혈자리는 중완혈. 뜸장은 15~35분 타는 강력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7장 정도 뜨면 약쑥의 불기운이 심장으로 통하고, 그러면 피는 이미 녹아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심장의 온도가 정상을 되찾으면 판막 신경도 약쑥불의 강자극과 온도의 힘이 작용하여 정상으로 되돌아 온다.
익시자
우선 더운 손으로 가슴 부위를 중심으로 온 몸을 마찰시켜 몸의 온기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중완혈에 침을 놓는다. 보통 한방에서는 8푼짜리 침을 놓는데 그것으로는 역부족이다. 24푼짜리 침을 꽂아야 한다. 침도 그냥 놓는 것이 아니다. 침의 달인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정신력으로 전신의 온도를 환자의 심장으로 전한다. 그것은 일종의 기압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침술은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 그래서 뜸을 해야 한다.
뜸자리는 중완혈. 15~30분 타는 주먹만한 뜸장을 올려 놓고 태워가다 보면 살 사람은 다 스스로 일어나게 된다.
심장병
정충, 경계, 심장판막증, 협심증, 심허증, 심부전증, 심근경색
심장 질환을 다스리는 영구법의 주된 뜸자리는 단전이다. 매년 봄, 가을마다 5분 이상 타는 뜸장으로 뜨되, 50세 전후는 2~3백 장을 뜨고, 60세 이후부터는 500~1,000장 까지 떠야 한다.
협심증, 판막증, 심포락의 출혈증 등의 어려운 질환은 전중혈에 뜸을 떠 다스린다. 한 장 타는 시간이 15초~30초인 쑥뜸을 하루 1백장씩 15일간을 뜬다. 환자가 유아인 경우 5~15초, 신생아인 경우 4~5초 타는 뜸장으로 뜬다. 이렇게 하여 성인은 한 철에 700~1,500장, 어린 아이는 300~400백, 유아는 200~300장, 신생아는 150장을 기준으로 뜨되 정신력과 체력이 감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뜬다. 이어서 단전에도 뜸을 뜬다.
단전 뜸은 성인인 경우 5분 이상 타는 뜸장으로 300장 이상 떠야 한다.
당뇨병
가미생진거소탕, 마늘 죽염 요법, 생강감초탕, 쥐눈이콩
5분 이상 타는 뜸장으로 봄, 가을마다 300~500장 정도씩 뜬다. 뜸을 뜰 적에는 자신의 체력과 인내력에 맞게 조절해야 하며 특히 혈액형이 O형인 사람은 뜸장수를 많이 줄인다. 뜸장에 불을 붙일 때는 중완, 단전의 순서를 지킨다.
중풍
중풍이 처음 발병한 뒤로 부터 1년 이상이 경과하게 되면 뼈마디와 신경이 굳어져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난치 중풍이 된다. 이 경우엔 약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므로 부득이 쑥뜸을 겸해야 한다.
중풍을 다스리기 위한 뜸자리는 중완, 단전, 양쪽 족삼리 등 모두 네 곳이다. 5분 이상 타는 뜸장으로 봄, 가을마다 각 3~5백 장 이상씩 뜬다.
신장병
신장염, 신부전증, 신경화증, 신장결석, 신장결핵 등
뜸자리는 중완, 단전, 양 족삼리 등 네 곳.
하반신 마비
중완, 단전, 양 족삼리
진폐증
뜸자리는 중완과 단전(관원)이다. 5분 이상 타는 뜸장으로 두 곳을 함께 뜨되 봄, 가을로 각 300~500장 가량 뜨면 몇 해 안에 진폐증은 물러간다. 정도가 극심하지 않은 환자는 한 두 철 뜸으로도 완치시킬 수 있다.
에이즈
“에이즈를 나는 음저창이라고 부르는데, 음저창에는 뜸 떠주면 돼. 대번에 15분 짜리 뜸을 떠야 하는데, 뜸이 처음인 환자는 견딜 도리 없어. 힘 센 사람 몇이서 환자의 사지를 단단히 잡아 줘야 해. 15분 짜리 뜸장을 남자에게는 석 장, 여자에게는 다섯 장을 뜨게 되면 줄줄 흘러나오던 피고름이 멎고 급성환자라도 10일 만에 생명의 위급을 면하고 50일 쯤이면 완치되는데, 뜸의 고통을 이겨 내는 환자의 노력 없인 치료가 불가능하지. 환락 끝에 이루는 병은 생각보다 처참하지.”
간질
간질이란 발잘적으로 의식장애가 오는 것을 주증으로 하는 질환을 말한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며 가슴이 답답하고 하품하는 증상을 나타내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넘어지면서 온 몸에 경련발작을 일으키고 눈을 치켜 떠 한 점을 응시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오줌을 싸며, 얼마간 혼수상태에 이르렀다가 깨어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간질의 주원인은 위벽의 담성이다. 즉 위신경과 뇌신경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위벽에 견고하게 자리잡은 담으로 인해 어떤 조건에 따라 간헐적으로 신경마비를 일으키게 되어 발작, 경련, 혼수상태 등 간질 특유의 정신분열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밖에 교통사고, 뇌염, 뇌종양 따위에 의해 뇌가 손상을 입었을 경우에도 간질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제반 뇌질환 치료시 고열이 난다 하여 얼음찜질하는 예가 비일비재한데 그럴 경우 뇌신경이 더욱 심한 충격을 받아 뇌질환이 낫는다 해도 간질 아니면 저능아, 소아마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간질은 발작의 성질에 따라 닭간질, 소간질, 말간질, 염소간질, 돼지간질 등으로 구분된다. 위벽에 성한 담이 뇌신경을 차단하거나 뇌질환 후유증으로 뇌신경이 혼란을 일으켜 간신경 계통을 마비시키면 닭간질이 되며, 비 신경계통을 마비시키면 소간질, 심 신경계통을 마비시키면 말간질, 폐 신경계통을 마비시키면 염소간질, 콩팥 신경계통을 마비시키면 돼지간질이 발생한다.
이 다섯가지 간질은 얼굴과 입술의 색에 의해 구분할 수 있다. 즉 발작시 얼굴과 입술의 색이 파래지는 건 닭간질이고, 얼굴은 하애지고 입술은 노래지는 건 소간질, 얼굴이 노래지고 입술이 빨개지는 것은 염소간질, 얼굴은 노래지고 입술은 하애지는 건 말간질, 얼굴과 입술이 새까매지는 것은 돼지간질이다. 이 다섯가지 간질 중 돼지간질이 가장 치료하기 어렵다.
돼지간질은 치료를 시작하여 5년 안에 완치하기가 어려운 악성 질환이므로 꾸준한 인내심을 갖고 치료에 임해야 한다. 특히 전신이 먹장같아지면서 며칠간 지속되는 간질은 최고 난치에 속한다.
닭간질, 염소간질, 소간질은 중완, 말간질은 전중과 중완, 발에서부터 발작이 시작되는 돼지간질은 중완, 족삼리, 은백, 손에서 시작하는 돼지간질은 견우, 곡지, 중완 등이 주된 뜸자리다.
이와 같은 뜸자리에 뜸을 뜨되 중완과 족삼리에 뜰 때는 5분 이상 타는 뜸장으로, 전중, 은백, 견우, 곡지에 뜰 때는 30초 정도 타는 뜸장으로 뜬다.
맹인
인산 선생에 따르면 맹인은 신열과 간열로 안구와 안공의 조직이 훼손되고 간열로 시신경이 마비되어 완전히 맹인이 된다고 한다. 치료법은 단전(관원)뜸이다. 단전에 뜸을 떠 명문, 삼초화를 재생시키면 시신경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맹인이 눈을 뜰 수 있다.
진성뇌염ㆍ뇌막염
침을 이용한 치료법. 우선 백회혈을 중심으로 5방 침을 놓는다. 백회혈 중앙에 1푼 깊이로 침을 놓고 이어 환자의 오른쪽으로 5푼 거리 지점에 1푼 깊이의 침을 놓는다. 이어 중앙에서 환자의 뒷쪽으로 5푼 거리 지점과 중앙에서 왼쪽으로 5푼 되는 곳, 중앙에서 앞쪽으로 5푼 되는 지점에 각각 차례로 1푼 깊이의 침을 놓는다.
그리고 신회혈에 1푼 깊이의 침을 놓고 양손 엄지 손가락의 소상혈에 1푼 깊이의 동침을 놓아 피를 내되 남자는 왼손 먼저, 여자는 오른손 먼저 넣도록 한다. 계속해서 코 밑의 인중에 침으로, 강자극을 주면 의식이 완전히 회복된다.
그러나 이렇게 침만으로 치료하면 회복되더라도, 뒷날 후유증으로 정신박약증ㆍ소아마비ㆍ간질병 등에 걸릴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침 치료 뒤에 뜸을 떠주어야 한다. 백회혈에 2분 타는 뜸장 9장, 신회혈에 1분 타는 뜸장 3장을 떠준다. 얼음에 오래 담아 두었던 아기도 이렇게 치료하면 후유증 없이 완치된다.
유아의 뇌염
유아의 뇌염은 사망으로 직결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경우 우선 침을 이용해 생명을 구해야 한다. 침 잘 놓는 사람을 불러 경락요혈인 백회혈에 침을 놓아 생명을 구한 다음 그 자리에 3분간 타는 뜸장으로 9장을 뜬다. 그러면 뇌에 범한 냉독이 혹성의 전류독과 합성하여 심하더라도 쑥뜸의 열과 자극으로 말끔히 가시고 뇌신경마비는 완쾌된다.
“어린 애기들 뇌염에 걸렸다? 그걸 얼음에다 담아 두면 숨넘어가기 전에 혹여 내게라도 와서 어린 애길 구한다면 병원에서는 정배기에 뜸 뜰 순 없고, 또 그러기엔 귀찮고. 그래서 아무리 친한 친구의 손자라도 내가 침을 가지고 소상혈에서,
혈관암, 넓적다리 오금의 암종, 무릎 오금의 암종 처방
이 질병들의 영구법을 통한 퇴치방은 마늘뜸이다. 환자를 반듯하게 누인 뒤 환부에 마늘을 곱게 다져서 1㎝ 두께로 5㎝ 넓이로 펴놓고 그 위에 쑥뜸을 뜬다. 한 장 타는 시간이 15분 이상 될 정도로 크게 떠야 한다. 약쑥의 신비한 약성과 화력의 높은 온도로 마늘이 끓으면, 그 끓는 물이 종처에 닿아 최고의 암약이 된다.
벙어리
벙어리의 치료는 8~10세까지가 적기이다. 이 3년 간에 걸쳐 치료하면 성대신경 발달이 적당하다. 고음신경 발달이 자연히 이루어 진다. 그러나 성장한 뒤에는 고음신경 발달이 극난하여 어렵다. 벙어리는 중완혈에 2~3분짜리 뜸장으로 쑥뜸을 뜬다.
여드름, 기미의 치료
여드름과 기미는 영구법을 하면 그 즉시 물러간다. 뜸을 잘 뜨면 남자든 여자든 피부에 잡티가 없이 고와진다. 피부에 거뭇거뭇한 점이 생기고 여드름 따위가 돋아나는 것은 몸 안의 독소 때문이다. 피가 맑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약을 발라봐야 그 때 뿐, 다시 생겨난다.
동상(얼음독)의 치료
동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저 몸이 얼어서 그런 것으로만 안다. 그러나 얼었다는 게 기실은 얼은 게 아니다. 가령 발이 얼으면 몸에 있는 모든 온도가 그에 맞서게 된다. 몸에 있는 온도가 극열로 화한다. 그렇게 하여 밖에서 들어온 극냉과 몸 안의 극열이 대결하면 사람은 화상을 입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불에 타게 된다. 그래서 동상을 입어 죽은 사람의 살을 보면 새까맣게 타 있다. 뼈까지도 새까맣게 타 죽는 것이다.
이러한 동상의 영구법 퇴치방 역시 마늘뜸이다. 토종 마늘을 짓찧어 동상을 입은 당처에 놓고 살이 타 들어가도록 떠야 한다. 그러면 그 뼛속에서 화독이 작용해 이열치열로 몸 안의 불을 다스리게 된다.
골수암
골수암 역시 마늘뜸으로 다스린다. 뜸자리는 중완, 단전, 양쪽 발목의 복사뼈 등 네 곳이다. 중완과 단전에 뜸을 뜨는 방법은 다른 경우와 동일하다. 양쪽 발목의 복사뼈에다가 다음과 같이 뜬다.
토종마늘 잔잔한 놈을 짓찧어 다져서 양쪽 발목의 복사뼈 위에 손두께 이상 두껍게 놓는다. 그 다음 30~35분 타는 뜸장을 얹어 놓고 뜬다. 이렇게 뜸을 뜨면 약쑥 불의 화력으로 마늘이 끓어 그 물이 살에 닿아 마늘과 쑥의 약기운이 몸 속으로 침투하고 그 속에서 강한 인력을 발휘해 모든 염증을 끌어 당긴다. 그러면 뱃속에서부터 누런 물이 복사뼈로 내려온다.
마약 중독
약물중독은 영구법으로 쉽사리 치료할 수 있다. 한 철 쑥뜸이면 증세를 어지간히 진정시킬 수 있다. 마약 중독증은 중완과 단전에 쑥뜸을 떠야 한다. 뜨거움과 통증이 극한 상황까지 인간정신을 몰고가서 정신을 굳세게 해 주는 것은 뜸밖에 없다. 몇 철만 뜨면 강철같은 정신력을 갖게 되고 마약같은 인체 유해 약물은 저절로 싫어지게 된다.
꼽추
꼽추의 등을 펴기 위한 영구법의 주된 뜸자리는 중완이다. 그리고 단전과 족삼리를 함께 뜬다. 고치기 매우 힘든 병이므로 뜰 수 있는대로 많이 매년 철마다 계속 떠야 한다.
뜸으로 몸 안을 돌고 있는 더러운 피를 맑혀야 한다. 피가 맑아지면 척추의 물렁뼈가 제자리를 찾게 되고, 이어 골수가 형성된다는 것이 인산 선생의 말씀이다. “
... 그런데 중완하고 관원에다가 5분 이상 짜리 뜸을 떠 가지고 5백장이고 1천장이고 뜬 후에 키를 자에 놓고, 떠 가지고 그 때 가서 그 자 있는데 가 서면 5㎝가 큰 건 전부가 커져요. 그러고 또 6㎝ 이상 커지는 것도 많은데 늙인인 많이 커져요. 이런데, 그게 3㎝도 안 큰다? 이건 뜸을 잘게 뜬 거. 5분 이상 짜리 뜨면 다 커져. 그건 고임뼈가 그 물렁뼈인데 그 물렁뼈가 완전무결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절대 구부러들지도 않고 키가 줄어들지도 않아요.”
소아마비
소아마비를 다스리기 위한 영구법의 주된 뜸자리는 중완과 단전이다. 단전에 뜸을 뜨면 전신의 피가 맑아지고 신경이 차츰 정상을 회복해가며 강해진다. 그 힘으로 힘줄이 강해지면 뼈 또한 생기를 찾게 된다. 그러면 뼈에 골수가 차게 되고, 척추를 연결한 물렁뼈도 힘을 얻게 된다. 그 원리로 마비증이 차츰 풀려 언젠가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앉은뱅이의 주장혈은 단전과 족삼리다.
영구법 체험기
죽고만 싶었던 고통의 나날은 가고 (이지민, 학원강사)
국민학교 6학년 때인 1970년 겨울엔 오빠를, 그 이듬해 봄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잇따른 충격을 이기고 나는 학교 생활에 충실했고 중ㆍ고교 과정을 마친 다음 치과대학을 지원했다. 입시에 실패하자 난 재수가 하기 싫었다. 그래서 텔렉스를 배웠고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그 무렵 1978년 구정 때부터 입맛이 없고 체중이 줄기에, 이상해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더니 폐결핵이었다. 약과 주사를 지겨우리 만큼 맞았지만 체중은 무섭게 줄어들었다. 그 해 7월 초에는 또 배가 이상해서 동네 병원에 갔더니 복막염이었다. 복막염 치료 1주일이 되던 일요일 밤, 배가 너무 아프기에 다음날 다른 병원에 갔더니 복막염이 터졌다고 했다. 빨리 수술 않으면 위험하다기에 ○○병원에 입원했다.
그 때 체중이 불과 30㎏ 밖에 되지 않았고 몸이 쇠약한데다가 복막염이 터져 온 배에 고름이 가득해서 수술해도 자신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우셨지만 그래도 살아나서 퇴원할 수 있었다. 불면증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차츰 회복되어 1979년 여름엔 취직하여 출근하려는데 그 날 발이 쥐가 난 것처럼 이상했다.
병원에 갔더니 결핵약을 오래 먹어서 생긴 말초신경염이라 했다. 며칠 치료를 받다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모 대학병원에 가 정밀 검사를 한 결과 척수염이란 진단이 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 처방대로 약을 먹었는데 그 약의 부작용으로 44㎏ 체중이 80㎏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그 부신피질 홀몬제제의 약을 갑자기 끊으면 위험하다고 해서 차차 줄여 가며 먹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고열이 나서 ○○대 병원에 갔더니 결핵이 침투해서 신경이 많이 상했고 척추뼈가 내려 앉았다고 했다. 수술을 하여 생명을 건지기도 어렵고 낫는다고 하더라도 걸을 수도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으나 오히려 죽음을 선고받고 나니 마음은 더 편했다.
척수염으로 누워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물건도 손을 뻗어 가져오지 못할 땐 신경이 머리끝까지 뻗었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여기고 자살 방법을 궁리하게 되자, 어머니는 무슨 낌새를 차렸는지 주위의 물건을 싹 치워 버렸다.
죽음의 사신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음을 느끼며 자살할 자유도 내게는 없는가를 하늘에 원망하며 괴로운 삶을 살고 있을 때 나는 김일훈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시고 “1년 뒤면 땅을 밟게 해 주마” 하셨다. 죽어가는 딸을 앞에 둔 엄마의 간절한 소망과 또하나, 죽을 자유를 얻고 싶은 나의 절실한 소원 때문에 나는 쑥뜸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이러했던 만큼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는 전혀 없었다. 미친 듯이 중완ㆍ단전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떠 대기 시작했다. 1주일 만에 오랫동안 비치지 않던 생리가, 참으로 오랫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삶의 징조일까? 하반신 마비로 꼼짝을 못해 왔던 나는 그 날 처음 기울고 비뚤어진 처참한 내 몸뚱이 위에서 시뻘겋게 타고 있는 뜸장을 보았다. 벌건 불덩이가 몸에서 타고 있는 걸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뜨거움의 감각에서 느끼지 못한 시각적 공포랄까.
그래도 엄마와 난, 한마음이 되어 열심히 떴다. 슬안, 족삼리도 떴다. 몇 장, 몇 근, 몇 시간... 그런 사치스런 샘을 할 여유도 없었다. 캄캄한 절망과 죽음 속에서 생명의 서광을 얼핏 본 나는 죽자 사자 뜨기만 했다. 차차 입맛이 돌아와 미음을 먹을 수 있게 됐고, 다음엔 죽, 그리고 밥을 먹게 되었다. 엄마는 딸의 생기를 보고 너무나도 기뻐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때문일까?
방안의 모든 것이 쑥 연기에 절어, 노랗다 못해 검을 정도가 될 때까지 부지런히 뜬지 1년 만에, 난 의자를 짚고 일어설 수 있었다. 드디어 땅에 발을 댄 것이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생전 일어서 보지도 못했던 사람처럼. 그때가 81년 가을이었다. 80년 12월부터 뜨기 시작, 겨울 여름 가릴 것 없이 뜨기 10여 개월 만이었다.
그제서야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솟아났다. 인산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처럼 시체에 가까운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모르게 모르게 나아진다고. 뜸의 신비를 확신하면서도 그건 정말 인내를 요하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80년엔 하루 몇 방씩 떴는지 기억이 없다. 그만큼 난, 생명이 위태로웠고 오로지 뜸을 뜬다는 사실에만 열중했으니까.
중완ㆍ단전을 뜬 지 1개월 만에 밥을 먹게 된 뒤부터는 슬안과 족삼리도 같이 뜨기 시작했다. 슬안은 다른 데보다 조금 작게 3달을 뜨고 고약을 붙였다. 난 평균 5분 이상쯤 되는 뜸장만 떴지 더 이상 크게 뜨지는 않았다. 처음 족삼리를 뜰 당시에는 하반신 마비였기 때문에 감각이 없었다. 5분짜리 뜸장을 올려놓아도 내 다리는 태연했으니까. 그 때문에 중완ㆍ단전이 더 뜨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1달 정도 족삼리를 뜨고 나니 뜨겁다는 감각은 없었지만 뭔가가 내 다리에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주 미미하게. 뜸을 뜬지 1년 만에 의자를 붙들고 일어섰고, 그리고 또 다시 1년 후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물론 벽을 짚고. 그렇게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83년도에는 한 손에 지팡이, 또 한 쪽엔 엄마를 의지하고 동네를 1바퀴씩 도는 연습을 했다. 조심스럽게, 몇 년만에 나와 보는 세상은 새로운 세계 같았다.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건 행복이란 걸 새삼 느꼈다.
83년 여름, 부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절에 다니게 되었고, 차도 타기 시작했다. 83년부터는 뜸수도 조금 줄여서 아침ㆍ저녁으로 19방 혹은 21방을 떴다. 그러니까 하루 40방 정도였다. 중완의 뜸은 84년에는 그만두었다. 단전과 족삼리만 떴다. 나의 하루는 뜸으로 시작해서 뜸으로 끝나느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작장 생활처럼. 80년 이래 나의 직업은 뜸뜨는 것이었다고나 할까. 장기간 뜸을 떠오며 때론 뜨거움에 울고, 그 뜨거움이 서러움으로 변하여 울고. 참으로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래서일까? 오직 자신에게만 집착했던 마음이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두 번 다시 주어진 생명에 인생을 다시 정의 내리게 끔 되었다. 너무 장기간의 생의 공백 때문일까. 마음이 해이해졌고 그래서 마무리가 좀 부족했던지 왼쪽 발목이 아직도 완전치 않다.
80년에 병이 악화되어 ○○대 부속병원에 2차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내 몸을 진찰대에 눕혀 놓고 매몰차리만큼 냉정하게 결핵균이 온 몸에 퍼져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한 담당 의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수술해서 결핵균을 제거하여 더 이상 퍼지는 것을 막고 8개월 이상 깁스를 하고 노력해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양쪽 목발을 짚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던 의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의사의 진단대로라면 나는 지금 약간 절뚝거리나마 혼자 힘으로 다니고 있으니 기적의 제곱 쯤은 되는 건가?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사형 선고 내지 불치의 선고를 받고도 내 경우처럼 인산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 신념을 갖고 자신과 싸워 본다면, 인명은 말 그대로 사람의 목숨이니까, 인간 즉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치골수암을 쑥뜸으로 완치하다 (왕길동/사업가)
1982년 8월, 17살 때이다. 당시 나는 심한 치골수염으로 1년 동안 전주 모 병원에 입원하였다. 어릴 적부터 턱밑에 파랗게 멍진 게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커지더니 직경이 약 15㎝나 될 정도로 악화되었다.
증상은 입에서 역겨운 냄새가 심하게 났고 왼쪽 얼굴과 이빨이 시리며 심한 통증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무렵엔 왼쪽 얼굴이 불거져 나와 밥도 씹을 수 없었다. 나중에 부모님을 통해 안 일이지만 나의 병은 고름이 치근에 배겨 얼굴이 썩어 가는 희귀한 난치병으로, 1년 이상 살기 어렵다는 게 병원의 진단이었다.
병의 원인은 어릴 적부터 얼굴에 누구에게 맞은 것 같은 멍이 있었다는 것 밖에는 모르나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피와 관련이 있지 않나 짐작된다. 어릴 적 바로 위의 형이 얼마 못 살고 죽었는데 형의 이마는 총맞은 것처럼 앞뒤가 움푹 패어진 기형이었다. 이것은 부모님의 나쁜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데 나에게도 부모님의 나쁜 피가 있었기에 얼굴에 퍼렇게 죽은 피가 뭉쳤으리라 생각한다.
병원에 1년 남짓 입원하며 받은 주치료 방법은 약물 복용이었다. 먹기도 힘든 약을 수도 없이 먹었다. 그러나 치료에 별 차도는 없었다. 오히려 퇴원할 무렵엔 처음 입원할 때보다 고통이 더욱 심해졌고 여기에 소화불량증, 현기증, 온 몸의 무기력증마저 새로이 생겼다.
결국 치료 불가능이란 판정을 받고 1년여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셈인데 10년이 지난 현재 나의 건강은 아주 좋다. 입에서 나던 역겨운 냄새도 사라졌고 얼굴의 퍼런 멍, 통증, 부기는 물론 소화불량증, 무기력증도 없다. 또 예전엔 오른발이 3㎝ 정도 짧았었는데 그것마저도 정상이 되었다.
이렇듯 죽음 직전의 내가 건강을 회복한 건 죽염과 쑥뜸 덕택이다. 나와 유사한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의 투병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의 치료 방법과 조금은 특이한 투병 과정을 공개한다.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은 한동안 나에게 이것저것 좋다는 한약이나 보약을 먹이기도 하고 영험이 있다는 절이나 기도원 등지로 데리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부모님도 지쳤던지 그 뒤론 치료를 포기하고 나를 집안에 그대로 두었다. 그렇지만 나의 가슴속엔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하루하루 괴로움 속에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던 나는 마침내 혼자서라도 용한 의사를 찾아 내 병을 고쳐 보리라는 결심으로 5천원을 가지고 가출하였다. 그 돈으로 잡화를 사서 팔기도 하고 구걸도 하여 돈이 모이면 병을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난 사람들을 수소문해 찾아가 치료를 받았다.
그들은 의사 면허는 없지만 비방 약과 비방 의술로 난치병을 잘 고치는 숨은 명의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환자들은 그들의 약과 침으로 곧잘 병을 고치고 돌아갔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의 병은 어딜 가도 치료가 되지 않았다. 6개월여 동안 조금이라도 병을 잘 고친다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그것은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죽염과 쑥뜸을 알게 되어 생명을 다시 찾은 것은 자살하려고 남원 실상사를 찾아가면서부터이다. 몸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 좌절감만 깊어졌다. 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점 잘 보는 아주머니에게 찾아가 다음 세상에나 좋은 곳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죽을 시간과 장소를 알려 달라고 간청하였다. 처음엔 젊은 사람이 왜 죽으려 하냐고 야단도 맞고 내쫓기도 했지만 서너 차례 찾아가자 그 아주머니느 남원군 실상사 뒤편에 있는 ‘자살바위’에 가서 죽으면 사후에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길로 실상사에 찾아갔다. 이 세상은 고통스럽기만 할 뿐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그 날은 날이 저물어 다음날 죽으리라 마음먹고 일단 실상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런데 새벽녘에 기이한 꿈을 꾸었다. 어떤 신선 같은 할아버지가 나타났는데 나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을 따라가며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부르다가 잠을 깼다.
그날 아침밥을 먹고 산에 오르는데 ‘자살바위’가 저만치 보이는 앞에서 웬 할아버지 한 분이 산에서 내려오고 계셨다. 그냥 스쳐 지나갈 법도 한데 그 할아버지는 자살바위를 가리키며 “너 저곳이 뭐하는 곳인지 아느냐”고 한마디 던지곤 내려가셨다. 오직 죽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지라 나는 그 말을 예사로 듣고 한참을 그냥 올라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새벽녘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가 방금 스치고 지나간 할아버지와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휘날리는 수염, 얼굴, 풍모, 차림새 등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 모습이 확연히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기이하게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가 현실로 나타난 점, 그 분이 던지고 가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다 그 할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뛰어서 산을 내려왔다. 그 할아버지라면 나에게 뭔가를 깨우쳐 주고 나의 병을 고쳐줄 수 있을 거란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이미 온데 간데 없었다.
그 날 오후 내내 찾아다녔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날부터 날이 밝으면 인근 고을을 샅샅이 뒤지며 그 할아버지를 찾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러다 내가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찾아 헤맨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 나는 어느덧 함양 땅까지 밟게 되었다. 함양 상림숲 옆으로 흐르는 개천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산에서 보았던 그 할아버지가 숲에서 내려오고 계셨다.
그분은 바로 인산 선생님이셨다. 나는 무조건 인산 선생님을 붙잡고 불쌍한 사람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인산 선생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더니 “그렇게 살고 싶은데 거기는 왜 가”라고 나무라셨다. 그러면서 따라오라고 하시더니 집에 데리고 가 ‘새까만 돌덩이’와 함께 큰 봉투에 쑥을 담아 주셨다. 까만 돌덩이는 요즘 말하는 죽염이었다. 당시엔 그저 ‘돌소금’이라고 불렀다.
인산 선생님은 나의 배에 중완과 단전혈을 잡아 주시고 그 자리에 열심히 쑥뜸을 뜨고 또 돌소금을 먹으면 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쑥뜸 뜰 수 있는 곳을 찾아가 뜸을 뜨되 3년 동안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인산 선생님께 돌소금과 쑥을 한아름 받아 들고 나와 그 날부터 여기저기 절에 찾아 들기도 하고 동굴이나 사람이 살던 산동네 빈 집에 찾아 들기도 하면서 열심히 죽염을 먹고 쑥뜸을 떴다. 스님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생살에 뭐하는 짓이냐고 욕도 먹고 미친놈 취급도 많이 받았지만 하루도 쑥뜸 뜨는 걸 거르지 않았다.
쑥뜸과 돌소금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나에겐 나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인산 선생님만큼 마음에 와 닿는 분도 없었고 살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씀을 해 주신 분도 없었다. 인산 선생님을 생각하면 절로 용기가 났다.
그렇게 헤매고 다니며 쑥뜸을 뜨고 죽염을 먹은 지 5개월쯤 됐을 무렵 나의 몸엔 변화가 찾아왔다. 당시 나는 구걸을 하여 잡동사니를 얻어먹기도 하고 남의 밭에서 무를 캐 먹거나 수영이나 솔잎으로 연명하기도 했는데 그전에 그렇게 심하던 설사증이 없었다. 또 그전보다 덜 까무러치고 소화불량증도 덜했다. 장수는 셀 수 없지만 5개월 동안 여기저기 다니며 어지간히 쑥뜸을 많이 떴다.
그 후에 나는 사촌 형님이 비구승으로 있는 전남 광양군 백운산 성불사에 가서 머리를 깎고 행자생활을 하며 쑥뜸을 떴다. 쑥뜸을 뜬 지 8개월쯤 되었을 무렵 나에겐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얼굴의 반점이 차츰차츰 사라지고 언젠가부터 입 안에서 나던 역겨운 냄새도 없어졌다. 어릴 때부터 짧았던 오른발이 하루하루 커나오더니 편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전체 몸 또한 가뿐하였다.
나는 그 후 7개월 동안 더 쑥뜸 고행을 하고 뜸자리에 고약을 붙였다. 쑥뜸 기간으로 보면 총 15개월 째요, 쑥뜸 양으로 보면 중간에 인산 선생님을 찾아 뵙고 쑥 한 푸대를 더 가져왔으니 총 2푸대를 뜬 셈이다. 쑥도 다 떨어지고 죽염도 다 떨어졌다.
고약을 붙인 곳에선 고름이 엄청나게 흘러 나왔다. 나를 그렇게도 괴롭혔던 나쁜 피와 독소들이 패잔병처럼 고름이 되어서 빠져 나왔던 것이다. 전쟁 후 복구 작업하듯 피고름 흘러나오는 게 멎고 뜸자리가 아무는 데만 해도 몇 개월이 걸렸다.
뜸을 마치고 고름이 다 흘러나오고 난 후의 내 모습은 완전히 정상이었다. 병증이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이 또렷하고 온몸에선 힘이 솟아났다. 건강을 다 회복하고 나서 인산 선생님을 찾아뵈니 선생님은 그제야 나의 병은 치골수암이었다고 들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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