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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 세균의 세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믿음은 환상이다. 그러나 운명을 통제하는 광대하고 신비한 우주가 저 바깥이 아니라 우리 몸 안에 있으며, 그 자세한 내막을 우리가 곧 파악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금 바로 수긍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쯤에는 이 말이 사실임을 다들 확신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면 몸속의 우주가 우리를 안내하고 지원하도록 설계됐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훼손한 이 우주를 회복할 능력을 얻어, 현재 겪고 있는 모든 증상과 불편함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맨 인 블랙>을 본 적이 있는가? 영화의 한 장면에서 퍼그 강아지 모습을 한 프랭크라는 어느 외계인은 주인공들이 찾고 있는 은하계가 지구에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은하계는 오리온의 띠에 있어!" 두 주인공은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오리온의 띠가 널리 알려진 별자리인 오리온자리를 뜻하는 것으로 추측했는데, 오리온자리는 지구에 없고 오리온자리의 별은 고작 세 개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은하계에는 별이 약 1억 개가 있다고 추산되는데, 어떻게 자그마한 별 세 개에 은하계 전체가 들어 있을 수 있겠는가?
프랭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답답한 인간들 같으니!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언제쯤 깨달을까? 엄청나게 중요하다고해서 꼭 크지만은 않아. 대단히 주용한 것도 크기가 아주아주 작을 수 있다고!"
영화 중후반에 이르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들도 은하계 전체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외계인 프랭크가 전하려던 사실이었다. 생명체가 가득한 별, 태양계, 행성으로 구성된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은하계는 오리온이라는 고양이의 목걸이에 매달려 있었다. 프랭크가 '오리온의 띠'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 목걸이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우리 모두와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다만 그들이 저 먼 우주를 올려다보며 은하계를 찾으려 했다면, 우리는 그동안 엉뚱한 곳에서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찾으려 해왔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크기가 클 것이며 그래서 우리 밖에 있으리라 추정하고, 바깥에 있는 것들을 탐색하는데 주력해왔다. 하지만 건강과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요인은 실제로는 가장 작은 것들이다. 그것을 찾으려면 우리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실제로 인간의 소화계에는 종류가 최소 1만 종 이상이며 개체수가 수조 마리 이상인 세균, 그 수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바이러스, 곰팡이, 기타 미생물들로 이루어진 대집단이 서식하고 있다. 바로 장내 생물군계gut biome다. 그뿐 아니라 우리 몸에는 세균 700여 종으로 이루어진 구강 생물군계와 세균 1천 종으로 이루어진 피부 생물군계도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모든 미생물이 모여 인간의 홀로바이옴holobiome(전체 생물군계)을 이룬다. 이 미생물들에 포함된 유전자는 300만 개 이상인데, 이와 비교해 인간 유전체genome에 포함된 유전자는 2만 3천개에 불과하다.
인간의 미생물 군집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잠시 한번 따져보자.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 수는 80억 명이 조금 넘는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장에 서식하는 세균 수는 지구의 인구보다 1만 2500배나 많다는 뜻이 된다. 사람보다 식물과 비교하는 것이 더 잘 와닿는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최근 조사된 바에 따르면 지구에 있는 나무의 총수는 약 3조 그루다. 사람이 매년 수십억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고 있는데도, 이 세상에 있는 나무 수는 그동안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7배 이상이나 많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의 장에 서식하는 세균 수는 전 세계 모든 나무 수보다 97조나 더 많다.
내가 의과대학에 다니던 먼 옛날에는 인간의 장이 기본적으로 속이 텅 빈 관이라고 배웠다. 음식물이 장에 들어가면 소화작용이 일어나 단백질, 포도당, 지방이 흡수되고, 남은 찌꺼기는 대변으로 나오는 것이 전부라고 믿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의 장이 빽빽한 열대우림과 비슷하며 그 안에는 다양한 생태계, 생물군락, 여러 신호 체계, 단세포생물의 소통에 쓰이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상당히 놀랍게도 장내 미생물은 그런 언어를 이용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법, 피부, 근육, 관절, 장기, 세포, 세포기관의 건강을 유지하는 법을 알려주며, 역으로 염증과 질병을 일으켜 우리 몸을 공격하기도 한다. 수십억 마리나 되는 이런 단세포생물들은 우리가 가늠하기 힘든 대단히 충격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조종하고 통제한다.
6년 전에 ⟪플랜트 패러독스⟫를 출간했는데, 당시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생각하며 책을 썼던 기억이 난다. 부족했을지 몰라도 지금껏 내가 올바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런데 전작이 출판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미생물이 우리 몸의 모든 부위와 상호작용 하고 서로 소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무엇보다도 세포의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를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다. 장내 미생물은 이런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면서 건강과 장수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는데, 이런 시스템을 해독해서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하는 법을 이 책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먼저 이런 작은 미생물이 우리르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말 그대로 작은 사례부터 살펴보자.
톡소포자충증toxoplasmosis(톡소플라스마증)을 유발하는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톡소플라스마 곤디)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단세포생물이다. 임산부들은 고양이 배설물을 가까이하지 말고 고양이 대변을 치우는 일은 배우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충고를 흔히 듣는다. 임신기에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태아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은 톡소포자충이 애초에 어떻게 고양이 배설물에 기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임신 계획이나 고양이 키울 계획 여부에 관계없이, 톡소포자충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측면에서 우리 모두와 관련이 있는 단세포생물이다.
톡소포자충의 생명 주기는 두 단계로 나뉜다. 톡소포자충에게는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숙주가 있으며, 최종 목적지인 숙주에 도달하기 위해 중간 매개체인 다른 숙주를 활용한다. 톡소포자충의 최종 목표는 고양이로, 호랑이와 집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고양이가 이에 해당한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이의 장에서만 번식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최종 목표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이에 접근하기 위해 설치류를 중간 숙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잘 알려져 있듯 설치류는 고양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이니 말이다. 어릴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 ⟨톰과 제리⟩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톡소포자충이 설치류의 몸속에 머물면서 고양이에게 잡아먹혀 고양이의 장에 진입할 기회를 노리는 것은 충분히 타당한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톡소포자충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했기 때문에 마냥 앉아서 쥐를 기다리고만 있을 필요가 없다. 쥐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켜 쥐가 고양이에게 더 잘 잡아먹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일까? 과연 단세포생물이 포유류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내가 이 책에서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를 한 가지만 꼽는다면, 단세포생물은 우리가 지금껏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며 우리를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단세포생물들의 끊임없는 통제 아래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혹시 톡소포자충이 쥐를 마비시켜 더 쉽게 고양이의 먹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것도 물론 그럴듯한 방법이지만, 사실 톡소포자충이 상황을 조종하는 방식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톰과 제리⟩에 나오는 제리는 용감하지만, 대부분의 쥐는 선천적으로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쥐는 고양이를 보거나 심지어 고양이 소변 냄새만 나도 근처에 얼씬 못한다. 실제로 고양이(또는 고양이 소변)에 평생 한번도 노출되지 않은 쥐에게 고양이 냄새를 맡게 해보면 즉시 도망간다. 고양이에 대한 공포와 이에 연관된 스트레스 반응은 쥐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생존 본능이다.
그런데 톡소포자충은 이런 공포 반응을 무력화한다. 톡소포자충은 쥐의 뇌에 있는 공포 경로를 조작해서, 쥐가 고양이 소변을 덜 무서워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고양이 냄새에 끌리게 만든다. 그러면 쥐는 도망가기는커녕 '킁킁... 오, 냄새 좋은걸!'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냄새가 나는 곳으로 다가갈 것이다. 머지않아 고양이가 나타날 테니, 그 쥐는 결국 고양이 뱃속에 들어갈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톡소포자충은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는 걸까? 스탠퍼드대학교 생물학, 신경학, 신경외과학 교수이자 내가 존경하는 학자인 로버트 사폴스키Robert Sapolsky는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의 뇌 화학을 연구해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뇌의 편도체amygdala는 인간과 설치류에서 모두 공포 반응과 관련이 있는 영역이다. 톡소포자충은 쥐의 신경계에 침투해 편도체로 이동해서, 뉴런이 다른 뉴런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는 부분인 가지돌기dendrite(수상돌기)를 쪼글쪼글하게 만든다. 그러면 편도체 내 공포 회로의 연결이 끊어진다. 그런데 실제 작업은 이보다 훨씬 정교한 수준으로 진행된다. 톡소포자충은 다른 유형의 공포 회로는 내버려두고 오직 포식자에 대한 공포와 관련된 회로만 차단한다.
그러면 쥐는 더 이상 고양이 소변을 두려워하지 않고, 냄새를 맡더라도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거나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어떻게 쥐가 고양이 소변 냄새에 이끌리게 되는 걸까?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톡소포자충의 유전체에는 도파민의 주요 효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도파민은 쾌락, 끌림, 기대, 보상과 관련이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쥐와 고양이의 사례에서 톡소포자충은 도파민을 생성해 쥐의 뇌로 보냄으로써, 성적인 끌림과 관련된 회로를 활성화한다.
그러면 쥐는 고양이 소변 냄새를 맡아도 포식자에 대한 공포를 일으키는 반응 경로가 비활성화되어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더 나아가 고양이 소변 냄새를 아주 좋아하게 된다. 공포 회로 대신 성적 매력과 관련된 회로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쥐는 위험 요소인 고양이 소변을 향해 달려들어 죽음의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이 총명한 단세포생물은 포유류의 뇌 화학 작용과 행동을 완전히 장악해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했다. 꽤 인상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톡소포자충은 설치류를 넘어 영향을 미친다. 야외 생물학자field biologist들은 2022년에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사는 회색 늑대 상당수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됐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늑대들의 행동도 설치류의 경우처럼 조작되고 있는지 의심했다. 조사 결과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늑대들은 그렇지 않은 늑대들보다 집단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무려 46배나 높았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담성이 있어야 하는데, 톡소포자충으로 인해 늑대들은 위험을 더 많이 감수했다. 그런데 톡소포자충은 대체 왜 늑대의 행동에 관여하는 걸까? 회색 늑대의 주요 포식자는 쿠거cougar, 즉 고양잇과인 퓨마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고양이 대변에 톡소포자충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떠오를지 모르겠다. 톡소포자충과 인간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사람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심가갛게 아플 수도 있지만, 톡소포자충을 보균하더라도 아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때도 많다. 선진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었다고 추정한다. 이들은 병적인 증상이 없어서 무증상 보균자로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톡소포자충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톡소포자충은 이런 잠복 단계에 도파민을 구성하는 효소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물론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고양이 소변에 이끌리지는 않겠지만,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충동적이고 규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타인을 구하려고 위험을 무릅쓸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이른바 영웅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톡소포자충의 꼭두각시가 되어 행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난폭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두세 배 더 높다. 톡소포자충 때문에 높아진 도파민 수치로 위험을 무릅쓰게 되는 것이다.
한편 톡소포자충과 조현병 사이에도 흥미로운 연관 관계가 있다. 조현병 환자에게서 도파민 수치의 변화가 관찰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만일 조현병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을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에게 투여한다면, 그 쥐는 더 이상 고양이 소변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톡소포자충은 왜 사람에게 관여할까? 인간의 장에서 번식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최근까지도 인간과 유인원이 호랑이를 비롯한 고양잇과 동물들의 주요 먹잇감이었다. 실제로 연구원들이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이며 표범의 먹잇감이기도 한 침팬지를 조사한 결과,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침팬지는 보통의 침팬지와 달리 표범 소변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잇과 동물이기만 하면 특별히 종류를 가리지 않아서, 고양이 뱃속에 기생하듯 호랑이와 표범의 장에서도 기꺼이 기생하고 번식한다.
다시 말해 톡소포자충은 설치류를 이용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인간을(그리고 인간과 가까운 종인 침팬지들을) 이용한다. 톡소포자충은 두려움을 없애고 위험에 뛰어들게 해서 우리가 호랑이 같은 맹수의 쉬운 먹잇감이 되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발달한 생물이며 인간은 정신으로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톡소포자충이라는 단세포 생물에게 지배당한 우리는 본질적으로 거대한 실험 쥐에 불과한 존재다.
이로써 주요 논점이 일단락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장담하건대 이제부터 다룰 중요한 내용이 수없이 많다.
톡소포자충의 사례가 드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을 숙주로 이용하는 다른 단세포생물들도 톡소포자충과 마찬가지로 무척 복잡하고 정교하고 지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한다.
외계인 프랭크가 "답답한 인간들 같으니! 언제쯤이나 깨달을까?"라고 말했듯이, 현미경을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이런 미세한 세계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잘 모른다. 그렇지만 전체를 완벽히 파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동에 나서도 될 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인체의 주요 구성요소라고 생각했던 비교적 적은 수의 세포에 치중하느라 이런 미생물들을 간과해왔고 이제는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큰 수에는 힘이 있고 다수의 존재는 쉽게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껏 그런 다수의 존재를 무시해왔다. 실은 단순히 다수를 무시하는 수준을 넘어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대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몸 안의 미생물 생태계를 못 본 체하고, 파괴하고, 대폭 감소시키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잇달아 도입했다. 그 시기에 자가면역질환, 비만, 정신 질환을 비롯한 주요 질병이 급속히 확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병원에서 이런 환자들을 날마다 진료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방금 언급한 병과 그 밖의 많은 질환이 그동안 현대적 생활방식을 따르면서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훼손된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이 화가 나 있으며, 이제 더는 그냥 참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장검진Gut Check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에 서식하는 미생물 대부분은 톡소포자충처럼 위험을 무릅쓰게 만들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장내 미생물은 우리가 건강하고 번성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내가 '장내 유익균gut buddies'이라고 즐겨 부르는 이런 이로운 장내 미생물들은 우리를 숙주인 고양이처럼 여긴다. 즉 그들은 우리의 장에서 번식하면서, 그들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고 싶어 한다.
이 미생물들과 우리는 공생 관계이며 인간의 몸은 그들의 집이다. 우리는 루이 파스퇴르 시대 이래로, 이 미생물들이 우리의 적이며, 우리에게 해를 끼치거나 최소한 그들이 없는 편이 더 낫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이제 잘 알게 됐듯이, 우리는 이런 미생물들 없이는 건강히 살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을 소중히 대하면 그들도 우리를 잘 돌볼 것이다.
2400년 전에 히포크라테스가 "모든 질병은 장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의사들이 탐정이 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생명력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의사의 임무는 자연의 생명력 에너지가 제대로 번창하지 못하는 요인을 파악하고, 추가 개입 없이 그저 이런 요인을 제거할 방법을 환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근거 없는 신비한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인간의 생명력에 대한 히포크라테스의 견해가 옳다고 믿는다. 나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어떤 병이든 근본 원인을 찾아낼 때까지 조사하는데, 근본 원인은 어김없이 늘 장에 있다. 내가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 일단 장이 균형 상태를 회복하면 병이 나아지거나 사라진다. 그래서 의사인 나는 셜록 홈스처럼 그저 열심히 탐색하기만 하면 된다. 인간의 자연적 생명력은 우리 장에 머무는 아주 작은 존재들의 은하계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이런 질병의 배후에 어떤 구조가 있는지를 속속 발견하고 있으므로, 나는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에서 한발 나아가 모든 질병은 장에서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장 체크! 프로그램을 실천하면 정말로 가능할 것이다.
이제 이 미세한 은하계 전체를 탐색할 시간이다. 단단히 채비하고,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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