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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운행함에 있어, 들이쉼은 충만해야 한다.
충만하면 그릇이 커지고,
그릇이 커지면 뻗어나갈 수 있다.
뻗어나가면 아래로 스며들고,
아래로 스며들면 고요히 가라앉는다.
고요히 가라앉으면 단단히 굳세어지고,
굳세어지면 싹이 트기 시작한다.
싹이 트면 자라나고,
자라나면 위로 물러난다.
위로 물러나면 머리끝에 이른다.
하늘의 신묘한 기운은 위에서 움직이고,
땅의 신묘한 기운은 아래에서 움직인다.
이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 것이요,
거스르는 자는 죽을 것이다.
— 기원전 500년, 주(周) 왕조 석문(石文)
서문 — 제임스 네스터
그곳은 마치 아미티빌의 악령이 깃든 집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풍경이었다.
칠이 벗겨진 벽, 먼지가 잔뜩 낀 창문, 달빛이 만들어내는 위협적인 그림자들.
나는 대문을 지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서른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다. 숱이 많은 눈썹과 지나치게 하얀 이가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신발을 벗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하늘빛으로 칠해진 천장을 가진 거대한 거실로 안내했다.
희미한 구름 무늬가 그려진 천장 아래, 나는 바람에 덜컥거리는 창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스며드는 그 창밖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죄수 같은 눈빛을 한 남자, 제리 루이스풍의 앞머리를 한 근엄한 사내,
이마 한가운데 어딘가 비뚤게 빈디를 붙인 금발의 여자.
발소리와 낮은 인사의 속삭임 사이로, 거리에서는 트럭 한 대가 “페이퍼 플레인(Paper Planes)”을 요란하게 틀며 지나갔다.
그때는 그 노래가 세상 어디서나 들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허리띠를 풀고 청바지 단추를 느슨히 푼 채 자리에 기대앉았다.
이곳에 오게 된 건 의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는 내게 “호흡 수업이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호흡은 약해진 폐를 강화하고, 뒤틀린 마음을 진정시키며,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해줄지도 모른다고.
몇 달 동안 나는 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의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졌고, 130년 된 내 집은 여기저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얼마 전 폐렴에서 막 회복된 참이었고, 그 병은 해마다 나를 찾아왔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헐떡이며 보냈다.
일을 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같은 그릇으로 세 끼를 때우며.
몸도, 마음도, 삶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다 결국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수다르샨 크리야(Sudarshan Kriya)’라는 호흡법을 배우는 입문 강좌였다.
오후 7시 정각, 숱이 많은 눈썹의 여자가 문을 잠그고는 우리 가운데 앉았다.
그녀는 낡은 붐박스에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눈을 감으세요.”
쉿쉿거리는 잡음 속에서 인도 억양의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날카롭고 가늘며 지나치게 유려했다.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인위적인 음색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직 호흡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몇 분 동안 우리는 그 지시를 반복했다.
나는 옆의 담요 더미에서 하나를 집어 다리에 감았다.
찬바람이 새어드는 창가 아래, 양말 낀 발이 시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이 고요해지지도, 긴장이 풀리지도 않았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열 분, 어쩌면 스무 분쯤 지났을까.
나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런 오래된 빅토리아풍 집에서 먼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며 저녁을 낭비하고 있는가.
눈을 떠 주위를 살폈다.
모두 비슷한 표정이었다. 무겁고 지루했다.
‘죄수 눈빛’의 남자는 거의 잠든 듯했고, 제리 루이스 머리의 사내는… 음, 마치 소변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빈디 여자는 체셔 고양이처럼 굳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나가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무료 강좌였고, 강사도 돈을 받지 않는 봉사자였다.
예의상 자리를 지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고, 담요를 조금 더 당겨 덮은 뒤, 계속 숨을 쉬었다.
그러다 무언가 달라졌다.
변화의 순간을 의식하지는 못했다.
이완되는 느낌도, 생각이 사라지는 감각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장소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단 한순간에 일어났다.
테이프가 멈추고 눈을 떴을 때, 머리 위가 축축했다.
손을 들어 닦아보니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을 문지르자, 땀이 눈으로 스며들어 따가웠고, 입에선 짠맛이 느껴졌다.
몸을 내려다보니 스웨터와 청바지에 커다란 땀 얼룩이 번져 있었다.
방 안 온도는 섭씨 20도쯤, 결코 덥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은 후드티와 점퍼를 걸치고 있었는데,
나만 마라톤이라도 뛴 사람처럼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다.
강사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요? 열이라도 있는 건가요?”
나는 멀쩡하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몸의 열’과 ‘새로운 기운을 들이마시고, 묵은 에너지를 내쉬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말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젖은 옷을 입고 세 마일을 자전거로 타고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놀랍게도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함과 고요함이 온몸을 감쌌다.
잠도 깊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어깨와 목의 긴장도 사라졌다.
며칠 동안은 그 상태가 지속되다가, 서서히 희미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낡은 집에서 한 시간 동안 숨을 쉬었을 뿐인데, 왜 그런 깊은 반응이 일어난 걸까?
그다음 주에도 나는 다시 그 호흡 수업에 갔다.
이번엔 땀이 덜 났지만, 같은 경험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몇 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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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집을 고치고, 마음의 침체를 벗어났으며,
‘호흡’의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하나 얻었다.
그 계기로 나는 그리스로 떠났다.
‘프리다이빙(freediving)’—숨 한 번으로 수백 피트 아래로 잠수하는 고대의 잠영법—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잠수 사이사이, 나는 수십 명의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그들이 어떻게 그 깊이까지 내려가고, 왜 그렇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영장에서 3미터만 들어가도 귀가 아파 금세 떠오른다.
하지만 프리다이버들은 한때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훈련을 통해 자신의 폐를 단련했고, 우리가 평소 무시하던 숨의 능력을 깨웠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습을 통해 30미터, 60미터, 심지어 90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다고 했다.
나이, 체중, 유전적 조건은 상관없다.
핵심은 하나—호흡을 다스릴 것.
그들에게 호흡은 단순한 생리 작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힘이었고, 약이었으며,
인간이 초인적인 능력에 다다르는 수단이었다.
한 여성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수많은 음식이 있듯, 호흡법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요.
그리고 그 호흡법마다 몸에 미치는 영향은 모두 다르죠.”
또 다른 잠수사는 덧붙였다.
“어떤 호흡은 뇌를 영양으로 채우지만, 어떤 호흡은 신경세포를 죽입니다.
어떤 호흡은 생명을 연장하지만, 어떤 호흡은 그것을 단축시킵니다.”
그들은 믿기 힘든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호흡을 바꿔 폐 용량을 30퍼센트 이상 확장한 사람들,
숨쉬는 방식만 바꿔 체중을 감량한 인도 의사,
박테리아 독소 E. coli를 주입받고 호흡 리듬을 조절해 몇 분 만에 독을 제거한 남자,
호흡으로 암을 호전시킨 여성들,
그리고 맨몸으로 눈밭 위에서 원형의 얼음을 녹인 승려들까지.
모두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나는 밤마다, 취재를 마친 뒤 그 이야기들을 검증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 읽었다.
수중에서가 아니라, 육지에서 이런 ‘의식적 호흡’의 효과를 입증한 연구는 없을까?
엄청난 분량의 문헌이 존재했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수백, 혹은 수천 년 전의 기록이었다는 점이었다.
기원전 400년경의 중국 도가 경전 일곱 권은 전적으로 호흡에 관해 쓰여 있었다.
호흡이 어떻게 우리를 죽일 수도, 치유할 수도 있는가.
그 속에는 호흡을 조절하고, 늦추고, 머금고, 삼키는 방법까지 세세히 적혀 있었다.
그보다도 앞서 인도에서는 프라나(prāṇa)—숨과 영혼을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복잡한 호흡법을 통해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또한 불교에서는 호흡으로 수명을 늘리고, 의식을 확장했다.
이 모든 문화에서 호흡은 곧 강력한 약이었다.
“그러므로, 생명을 기르는 학자는 몸을 단련하고 숨을 기른다.”
한 도가 문헌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명백하지 않은가?”
그러나, 나에게는 명백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대의 폐의학(pulmonology), 즉 호흡기 의학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를 찾아봤지만,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와 과학자 대부분은 같은 입장이었다.
“호흡법이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건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거죠.
입이든 코든,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결국 결과는 같습니다.”
생각해보라.
최근에 건강검진을 받을 때, 의사가 호흡의 질을 측정했던가?
혈압, 맥박, 체온은 재지만, 호흡수나 산소·이산화탄소 비율은 묻지 않는다.
숨을 어떻게 쉬는지, 그 질은 의료 점검의 목록에조차 없다.
하지만, 만약 프리다이버들과 고대 문헌의 말이 옳다면?
호흡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이 동시에 이렇게 하찮게 취급되는 걸까?
나는 계속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나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던 게 아니었다.
내가 문헌을 뒤지고 프리다이버들을 인터뷰하던 바로 그 시기에,
하버드와 스탠퍼드 등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에서도
호흡의 숨겨진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연구는 폐의학 연구실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대 무덤 발굴 현장, 치과 진료실의 안락의자,
정신병원의 고무 패드 방 같은 곳에서 말이다.
이 과학자들 중 대부분은 애초에 호흡을 연구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호흡이 그들을 찾아왔다.
그들은 인간의 호흡 능력이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산업 시대 이후 얼마나 나빠졌는지를 발견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90퍼센트가, 거의 모든 현대인이 잘못된 방식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잘못된 호흡이 수많은 만성 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연구자들은 놀라운 사실도 밝혀냈다.
단지 호흡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천식, 불안, ADHD, 건선 등 수많은 질환이 완화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서양 의학의 오랜 상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렇다, 호흡 패턴은 체중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 호흡법에 따라 폐의 크기와 기능이 달라진다.
그렇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 자율신경계를 조절하고, 면역 반응을 통제하며,
심지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호흡은 건강의 마지막,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기둥이다.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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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로 그 ‘잃어버린 호흡의 과학’에 관한 탐험기이다.
평균적으로 인간은 3.3초마다 한 번 숨을 쉬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 몸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다룬다.
들숨 속의 분자들이 어떻게 뼈와 근육, 피와 장기, 뇌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내일과 다음 주, 내년, 수십 년 후의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탐구한다.
‘잃어버린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발견들이 사실은 모두 오래된 지식의 재발견이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 년 전에도 사람들은 이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명은 그것을 기록하고, 잊고, 다시 발견하고, 또 잊었다.
이 순환이 세기를 넘어 반복되어왔다.
이 분야의 초기 개척자들 대부분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호흡 탐험가(pulmonaut)’라 부를 만한 사람들—
남북전쟁의 외과의, 프랑스의 미용사, 아나키스트 오페라 가수, 인도 수행자,
까다로운 수영 코치, 우크라이나의 심장학자, 체코의 올림픽 선수,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의 합창 지휘자들.
그들 대부분은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다.
그들의 연구는 사라지고 흩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들의 방법이 다시 발굴되고,
과학적으로 검증되며,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이제 그 잊혀진 연구들이 인간의 잠재력을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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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호흡을 배워야 한다니요? 평생 숨 쉬고 살았는데?”
그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바로 그 무심함이 우리의 위험이다.
호흡은 단순히 ‘하냐, 멈추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연구를 깊이 파고들수록,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나 역시 평생 여러 호흡기 질환에 시달려왔다.
그게 나를 그 수업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어떤 약도, 흡입기도, 보충제도, 식단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결국 나를 구한 것은 새로운 세대의 ‘호흡 탐험가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치유했고,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이 책의 이 지점에서부터 끝까지,
평균적인 독자는 약 1만 번의 숨을 쉬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써냈다면,
지금부터 당신이 들이쉬고 내쉬는 모든 숨결마다,
‘호흡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숨 쉬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1분에 스무 번,
때로는 열 번,
입으로, 코로, 혹은 기관절개관이나 호흡관을 통해 숨을 쉰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모두 같은 숨이 아니다.
어떻게 숨 쉬느냐가, 진정한 차이를 만든다.
당신이 천 번째 숨에 이를 즈음이면 알게 될 것이다.
왜 현대인만이 만성적으로 비뚤어진 치열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호흡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또한 인류의 호흡 능력이 세월 속에서
어떻게 퇴화해왔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 동굴 속의 선조들은 결코 코를 골지 않았는지도.
이 책 속에서,
당신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된
20일간의 괴상하고 고통스러운 실험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 실험은 “입으로 숨을 쉬든, 코로 숨을 쉬든 상관없다”는
오랜 믿음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특히 당신이 코를 고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이 당신의 낮과 밤을 뒤흔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 마라—
다음 몇 천 번의 숨 속에서, 그 해결책 또한 찾아낼 테니까.
당신이 세 번째 천 번째 숨을 쉴 때쯤이면,
회복과 치유의 호흡, 즉 복원적 호흡의 기본 원리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느리고 깊은 호흡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노인과 청년, 병든 자와 건강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수천 년 동안 힌두교, 불교, 기독교와 여러 종교의 수행자들이
이 방법을 실천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서야
그 호흡이 혈압을 낮추고,
운동 능력을 높이며,
신경계를 조화롭게 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천 번째 숨에 이르면,
당신은 ‘의식적인 호흡’의 본질적인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입과 코를 지나, 더 깊은 곳—폐의 심층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당신은
한때 제2차 세계대전의 폐기종 환자들을 치유하고,
올림픽 단거리 주자들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한 중세기(中世紀)의 ‘호흡 탐험가(pulmonaut)’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단지 숨을 내쉬는 힘만으로 그것을 해냈다.
여덟 번째 천 번째 숨을 셀 때쯤이면,
당신은 인체의 더 깊숙한 곳, 신경계의 영역에 닿게 된다.
‘과호흡(overbreathing)’이라 불리는 숨의 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호흡을 통해 척추측만증을 교정하고,
자가면역 질환을 완화시키며,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체온을 높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당신은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여정의 사이사이에서 나 또한 배워가고 있었다.
십 년 전, 그 오래된 빅토리아풍 집에서
내게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1만 번째 숨을 내쉴 즈음,
이 책의 끝에 다다를 것이다.
그때쯤이면
당신과 나는 함께 알게 될 것이다—
폐로 들어가는 공기 한 모금 한 모금이
당신의 삶의 모든 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공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마지막 숨까지 최대의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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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많은 주제를 넘나든다.
진화와 의학의 역사, 생화학과 생리학, 물리학,
운동 생리학, 그리고 인간의 한계까지.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책이 탐구하는 것은 오직 당신 자신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
인간은 평생 약 6억 7천만 번의 숨을 쉰다.
어쩌면 당신은 그 절반쯤을 이미 써버렸을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 6억 6천9백만 번째 숨을 쉬고 있을지도.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아직,
몇 백만 번의 숨을 더 쉬고 싶을지도 모른다.
1장
동물계에서 가장 숨을 못 쉬는 종
환자는 오전 9시 32분, 창백하고 기운 빠진 모습으로 도착했다.
남성, 중년, 체중 175파운드. 말이 많고 친절했으나,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통증: 없음. 피로감: 약간. 불안 정도: 중간.
질병의 진행과 앞으로의 증상에 대한 두려움: 높음.
환자는 현대식 교외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생후 6개월 무렵에 분유를 먹었고 시판 이유식으로 이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씹을 일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식단은 치열궁과 부비강의 뼈 발달을 저해해 만성적인 비강 막힘을 초래했다.
15세가 되었을 때, 그는 더 부드럽고 고도로 가공된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하얀 식빵, 설탕이 들어간 과일주스, 통조림 채소, 스테이크엄(Steak-umm), 벨비타(Velveeta) 치즈 샌드위치, 전자레인지 타키토(taquito), 호스티스 스노볼(Hostess Sno Ball), 그리고 레지(Reggie!) 바.
그의 입은 지나치게 덜 자라 32개의 영구치를 모두 수용하지 못했고, 덧니가 된 앞니와 송곳니는 결국 발치해야 했다.
교정기, 유지장치, 헤드기어까지 동원된 3년간의 교정 치료 끝에 치아는 반듯해졌지만, 작은 입은 더 작아졌다.
결국 혀는 제자리를 잃었고, 이와 이 사이에 제대로 들어맞지 못했다.
그가 혀를 내밀 때면—자주 그랬듯이—그 옆면에는 치아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코골이의 전조였다.
17세 때 매복된 사랑니 네 개를 뽑았다.
그 결과 입은 더 작아졌고, 밤마다 질식하듯 숨이 막히는 수면 무호흡증에 걸릴 가능성은 커졌다.
그가 20대와 30대를 거치며 나이를 먹을수록 호흡은 점점 더 힘들고 비정상적으로 변했고, 기도는 더 막혀갔다.
얼굴은 위로 길게 자라나 눈이 처지고, 볼살은 흐물흐물해졌으며, 이마는 기울고, 코는 앞으로 돌출되었다.
이 위축되고 불완전하게 자란 입과 목, 그리고 두개골은 — 불행히도 — 내 것이다.
나는 지금 스탠퍼드대 이비인후과 진료센터의 검사 의자 위에 누워 있다.
내 자신을 바라보며, 내 안쪽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지난 몇 분 동안 제야카르 나야크 박사, 즉 비강 및 부비강 외과 전문의는 내 콧속 깊은 곳으로 내시경 카메라를 조심스레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카메라는 이제 내 머리 속을 통과해 반대편, 목구멍 쪽으로 빠져나왔다.
“‘이——’ 해보세요.”
나야크 박사는 검은 머리칼에 사각형 안경, 푹신한 러닝화, 흰 가운 차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옷도, 얼굴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비디오 고글을 쓰고 있었고, 그 화면엔 내 부비강 안쪽의 풍경이 생생히 비쳐지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언덕과 축축한 늪지, 그리고 종유석처럼 매달린 구조물들—심하게 손상된 내 부비강의 풍경이었다.
내시경이 조금 더 안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기침이나 구역질이 나올까 봐 간신히 참았다.
“‘이——’ 다시요.”
그의 말에 따라 하자, 내 후두를 둘러싼 분홍빛 점막이 끈적한 점액에 덮인 채, 조지아 오키프의 정지된 꽃처럼 천천히 열리고 닫혔다.
이건 결코 유쾌한 여행이 아니다.
25섹스틸(2.5×10²²)개의 분자가 매분 18번, 하루 25,000번 이 통로를 지나간다.
나는 지금 그 공기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길이 어디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우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리고 앞으로 열흘 동안, 내 코와 작별하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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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세기 동안 서양 의학의 일반적인 믿음은 이랬다.
코는 그저 부수적인 기관이라는 것.
가능하면 코로 숨을 쉬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입이 있으니까.
지금도 많은 의사와 연구자, 과학자들이 여전히 그 견해를 지지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는 폐, 눈, 피부질환, 귀 등 여러 기관을 다루는 부서가 27개나 있지만,
코와 부비강을 전담하는 부서는 단 하나도 없다.
나야크 박사는 그것을 터무니없다고 여긴다.
그는 스탠퍼드대 비강학 연구 책임자이자, 코의 숨은 능력을 연구하는 세계적 연구실의 수장이다.
그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인간의 머리 속 언덕과 종유석, 늪지 같은 그 구조물들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신체의 여러 중요한 기능을 조율하는 핵심 요소다.
“그 구조들이 왜 그 안에 있는지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앞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야크 박사는 코를 거의 경외심으로 대한다.
사람들이 코를 지나치게 오해하고, 과소평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코 없이 기능하는 몸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직접 보고 싶어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여기에 온 이유다.
오늘부터 나는 25만 번의 숨을 코 없이 쉴 것이다.
실리콘 마개로 콧구멍을 막고, 그 위를 수술용 테이프로 덮어 공기가 조금도 드나들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오직 입으로만 숨을 쉴 것이다.
끔찍하고 피로한 실험이 되겠지만, 분명한 목적이 있다.
현재 인구의 약 40%가 만성적인 비강 폐색을 앓고 있으며, 절반 가까이는 습관적인 ‘입호흡자’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그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건조한 공기, 스트레스, 염증, 알레르기, 오염, 약물 등.
그러나 곧 알게 되겠지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인간 두개골 앞부분의 ‘줄어드는 공간’ 탓이다.
입이 충분히 넓게 자라지 않으면 입천장이 위로 솟아올라 ‘V자형’ 혹은 ‘높은 궁형 구개(high-arched palate)’가 형성된다.
이 위로의 성장은 비강의 발달을 방해하고, 그 안의 섬세한 구조를 변형시킨다.
결과적으로 비강의 공간이 줄어들고 공기 흐름이 방해받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 지구상에서 가장 막힌 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야크가 내 비강을 들여다보기 전에 찍은 엑스레이 사진은 내 입, 부비강, 상기도의 모든 틈새를 정육점 슬라이서로 얇게 썬 듯 보여주었다.
“음, 꽤… 뭔가 있네요.”
그가 말했다.
내 입천장은 V자형이었고, 왼쪽 콧구멍은 심하게 휘어진 비중격 때문에 ‘심각한’ 수준으로 막혀 있었다.
게다가 내 부비강은 콘카 불로사(concha bullosa)라 불리는 기형 구조물들로 가득했다.
“매우 드문 경우예요.”
그는 덧붙였다.
의사에게서 듣고 싶은 말 중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나야크는 내 기도의 엉망인 상태를 보고, 어릴 적 겪었던 감염과 호흡 문제 외에 더 큰 고통을 겪지 않은 게 오히려 놀랍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꽤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언젠가는, 심각한 호흡 문제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다음 열흘 동안 강제로 입으로만 숨을 쉬게 될 나는, 일종의 점액질 수정구 속에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 안에서 내 호흡과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증폭시키고 가속화하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나빠질 상태를 재현하게 되는 것이다. 내 몸은 이미 익숙한 상태, 인류 절반이 겪고 있는 바로 그 상태로 스스로를 유도하게 될 것이다. 단지, 그 과정을 몇 배로 빠르고 강하게 겪을 뿐이다.
“좋아요, 그대로 계세요.”
나야크가 강철 바늘 끝에 마스카라 브러시만 한 철사 솔이 달린 도구를 집어 든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저걸 코에 넣으려는 건 아니겠지.
몇 초 뒤, 그는 그걸 내 코에 넣었다.
비디오 고글을 통해 나는 그가 브러시를 조심스레 더 깊숙이 밀어 넣는 걸 지켜본다. 처음엔 콧속의 털을 스치며 지나가던 그 솔은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가 머리 속 어딘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가만히요, 그대로.”
그가 말했다.
비강이 막히면 공기 흐름이 줄고, 박테리아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이렇게 늘어난 세균은 감염과 감기, 더 심한 코막힘을 유발한다. 막힘은 또 다른 막힘을 낳고, 결국 우리는 입으로 숨 쉴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손상이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지, 막힌 비강에 세균이 얼마나 빠르게 쌓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야크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내 깊은 비강 조직에서 샘플을 채취하려는 것이다.
그가 브러시를 더 깊이 비틀며 돌리자 나는 저도 모르게 찡그렸다. 신경은 원래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나 온도 변화를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지, 철솔이 긁는 걸 느끼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국소 마취제를 발랐는데도 감각이 전해졌다. 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머리 밖 어딘가에 내 쌍둥이 신체가 존재하고, 그 쌍둥이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죠?”
나야크가 웃으며, 피 묻은 브러시 끝을 시험관에 담았다. 그는 내 부비강에서 채취한 20만 개의 세포를 열흘 뒤 다시 채취할 샘플과 비교해, 코막힘이 세균 증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예정이다. 시험관을 흔들어 보인 뒤 조수에게 건네고는, 나에게 비디오 고글을 벗고 다음 환자를 위해 자리를 비켜 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두 번째 환자는 창가에 기대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마흔아홉 살, 깊게 그을린 피부에 흰 머리, 그리고 스머프처럼 푸른 눈. 흠 하나 없는 베이지색 청바지에 맨발로 로퍼를 신은 남자였다. 이름은 안데르스 올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무려 8천 킬로미터를 날아왔고, 나와 마찬가지로 5천 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이 실험에 참여했다.
몇 달 전, 나는 그의 웹사이트를 보고 흥미가 생겨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사이트는 얼핏 보면 의심스러웠다 — 산꼭대기에서 영웅 포즈를 취하는 금발 여성의 스톡 이미지, 번쩍이는 네온색, 과도한 느낌표, 거품 폰트. 하지만 올손은 허황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10년에 걸쳐 진지한 과학 연구를 수집하고 직접 실험해왔으며, 수십 편의 글과 수백 편의 논문 주석이 달린 책을 자비로 출간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호흡 치료사 중 한 명으로, 건강한 호흡의 미묘한 힘으로 수천 명의 환자를 치유해왔다.
내가 실험 중 열흘간 입으로만 숨 쉴 거라고 했을 때,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묻자, 단호하게 말했다.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요.”
그리고 몇 달이 지나, 그는 시차에 시달린 몸을 의자에 털썩 앉히더니 비디오 고글을 쓰고 앞으로 240시간 동안의 마지막 코숨을 들이마셨다. 그 옆에서 나야크는 강철 내시경을 드럼스틱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돌렸다.
“좋아요, 고개를 뒤로 젖히세요.”
그의 손목이 한 번 비틀리고, 목이 젖혀지자, 도구는 깊이 들어갔다.
실험은 두 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1단계에서는 코를 막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한다. 식사, 운동, 수면 모두 오직 ‘입으로’만 호흡하며 한다.
2단계에서는 1단계와 동일한 활동을 하되, 이번엔 코로만 숨을 쉬며 여러 호흡법을 병행한다.
각 단계 사이에는 스탠퍼드로 돌아가 우리가 방금 받은 각종 검사를 다시 받는다 — 혈중 가스, 염증 지표, 호르몬 수치, 후각, 비강 측정, 폐 기능 등. 나야크는 데이터를 비교해 호흡 방식의 변화가 뇌와 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할 것이다.
이 실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을 때, 꽤 많은 반응이 돌아왔다.
“절대 하지 마!” 요가 마니아 몇 명이 경고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이미 코로 숨 쉰 지가 10년은 넘었는데.” 평생 알레르기에 시달려온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반응했다. “숨 쉬는 게 다 그게 그거 아냐?”
정말 그럴까?
올손과 나는 앞으로 20일 동안 그 답을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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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약 40억 년 전쯤, 우리의 가장 먼 조상들이 바위 위에 등장했다. 그들은 작고, 점액질로 된 미세한 덩어리였다. 그러나 배고팠다. 살아남고 증식하기 위해, 우리는 공기를 ‘먹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였다. 썩 좋은 연료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쓸 만했다. 초기 생명체들은 이 기체를 흡수해 분해하고, 남은 찌꺼기로 산소를 배출했다. 그로부터 수십억 년 동안 원시 점액은 기체를 먹고, 점액을 만들고, 산소를 토해냈다.
그리고 약 25억 년 전, 대기 중에 충분한 산소가 쌓이자, 그 산소를 이용할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했다. 남들이 배출한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최초의 호기성 생명체였다.
산소는 이산화탄소보다 무려 16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호기성 생명체들은 이 에너지 덕분에 진화할 수 있었다. 진흙탕 바위를 떠나 더 크고 복잡한 존재로 성장했다. 육지로 기어오르고, 바다로 잠수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식물, 나무, 새, 벌, 그리고 최초의 포유류가 되었다.
포유류는 공기를 따뜻하게 하고 정화하기 위해 코를, 폐로 이끄는 목구멍을, 그리고 공기에서 산소를 흡수해 혈액으로 전달하는 폐포의 그물망을 발달시켰다. 수억 년 전 늪지대의 바위에 붙어 있던 호기성 세포들은 이제 포유류의 조직이 되어,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냈다. 혈액을 타고 다시 폐로, 그리고 대기 속으로 — 그것이 바로 호흡의 과정이었다.
이처럼 효율적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빠르게든 느리게든, 혹은 전혀 하지 않든 — 다양한 방식으로 숨 쉴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먹잇감을 잡고, 포식자에게서 달아나며, 수많은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적어도 약 150만 년 전까진 그랬다.
그 무렵, 인간이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통로가 미묘하게 뒤틀리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훗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호흡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 역시 평생 그 균열을 느껴왔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코막힘, 코골이, 가벼운 천명음(쌕쌕거림), 천식, 알레르기…
나는 그것들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정상적인 현상’으로 여겨왔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도 이런저런 호흡 문제를 하나쯤은 갖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런 문제들은 결코 우연히 생긴 게 아니었다.
그 원인은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 모두가 지닌 하나의 지극히 인간적인 특징 속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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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실험이 시작되기 몇 달 전, 나는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치과 교정의이자 구강 연구자인 마리안나 에번스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수년 동안 고대와 현대의 인간 두개골 속을 들여다보며, ‘입 안’이 인류의 변화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를 연구해온 사람이었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고고인류학 박물관의 지하실.
사방엔 수백 개의 두개골 표본이 진열되어 있었다.
각 표본에는 알파벳과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인종’이 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베두인, 콥트인, 이집트 아랍인, 아프리카 출생 흑인, 브라질 매춘부, 아랍 노예, 페르시아 포로 등.
가장 유명한 표본은 1824년, 동료 죄수를 죽여 먹은 죄로 교수형을 당한 한 아일랜드 죄수의 것이었다.
이 두개골들은 200년에서 수천 년 전 사이의 것이었으며,
19세기 인종우월주의자 새뮤얼 모턴의 이름을 딴 모턴 컬렉션(Morton Collection) 에 속해 있었다.
모턴은 1830년대부터 인류의 두개골을 수집하며 백인 인종의 우월성을 증명하려 했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연구에서 얻은 단 한 가지 긍정적인 결과는 바로 그가 모은 이 방대한 두개골들이었다.
이들은 과거 인류가 어떤 얼굴로, 어떤 방식으로 숨 쉬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기록이 되었다.
모턴이 “열등한 인종”과 “퇴화”를 보았다면, 에번스는 그 안에서 완벽에 가까운 균형미를 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었다.
유리 진열장 속에서 ‘파르시(Parsee)’, 즉 페르시아인이라고 적힌 표본을 꺼내더니, 캐시미어 스웨터 소매로 뼛가루를 털어내고 손톱으로 턱과 얼굴선을 따라 쓸었다.
“오늘날의 것보다 두 배는 크죠.”
우크라이나 억양이 섞인 그녀의 말투는 단호했다.
그녀가 가리킨 건 비강으로 통하는 목 안쪽의 비공(鼻孔, nasal aperture) 이었다.
두개골을 돌려 우리를 바라보게 한 뒤, 그녀가 말했다.
“보세요. 얼마나 넓고 또렷한지.”
에번스와 그녀의 동료, 시카고의 소아치과 의사 케빈 보이드 박사는 지난 4년 동안 모턴 컬렉션의 100여 개 두개골을 X선으로 촬영하고,
귀 윗부분에서 코까지, 그리고 이마에서 턱끝까지의 각도를 측정했다.
이 측정값은 각각 프랑크푸르트 평면(Frankfort Plane) 과 N-수직(N-perpendicular) 이라 불린다.
이 각도는 얼굴의 대칭성과 비율, 즉 입과 얼굴의 조화, 코와 입천장의 균형, 그리고 나아가 얼마나 잘 숨 쉴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놀랍게도, 고대의 모든 두개골은 파르시 표본과 완벽히 일치했다.
그들의 턱은 앞으로 길게 뻗었고, 부비강은 넓으며, 입도 컸다.
더욱 놀라운 건,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칫솔이나 치실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도 모두 치아가 고르게 반듯했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앞으로 자란 얼굴 구조와 넓은 입은 더 넓은 기도(airway) 를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부비강염, 기타 현대인의 만성 호흡기 질환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수조차 없었다.
그들의 두개골은 너무 크고, 기도는 너무 넓어서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숨 쉬는 것’ 자체가 편안한 존재였다.
이러한 전방 성장형 얼굴 구조는 모턴 컬렉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고대 인류 모두가 같은 형태를 보였다.
이 사실은 약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시점부터 불과 몇 백 년 전까지 유지되었다.
에번스와 보이드는 그 고대 두개골들을 현대인들의 것과 비교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현대인의 두개골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평면과 N-수직선의 각도가 뒤집혀 있었다.
턱은 뒤로 처지고, 이마보다 안쪽으로 들어가며, 부비강은 작아져 있었다.
모든 현대 두개골에는 어느 정도의 치열 불균형(malocclusion) 이 있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5,400여 종의 포유류 중,
턱이 어긋나거나, 덧니·주걱턱·무턱 같은 문제를 흔히 겪는 종은 오직 인간뿐이다.
에번스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스스로 병들게 진화한 걸까요?”
그녀는 파르시 두개골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사카르(Saccard)’라고 적힌 또 다른 표본을 꺼냈다.
그 얼굴 구조 또한 완벽하게 대칭적이었다.
“그게 우리가 밝혀내려는 이유예요.”
“진화(evolution)가 항상 ‘진보(progress)’를 의미하진 않아요.”
에번스가 말했다.
“진화는 단지 변화(change)일 뿐이에요. 변화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일어날 수 있죠.”
오늘날 인간의 몸은 ‘적자생존’과는 아무 상관없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건강에 해로운 특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있다.
하버드 생물학자 대니얼 리버먼(Daniel Lieberman) 이 제시한 개념, ‘역진화(dysevolution)’ 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왜 허리가 아프고, 발이 아프며, 뼈가 약해지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이렇게 숨을 잘 못 쉬게 되었는지 역시 설명해준다.
이 모든 변화가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려면
시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에번스는 말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 훨씬 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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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생명체들이 있었다.
사바나의 키 큰 풀숲 사이에 서서, 가늘고 길쭉한 팔다리를 흔들며, 마치 털로 된 챙 모자를 쓴 듯한 이마 밑에서
넓은 세상을 응시하던 존재들.
바람이 풀을 스칠 때마다, 껌알만 한 크기의 콧구멍이 턱 없는 입 위에서 수직으로 오르내리며
바람이 실어오는 냄새를 탐지했다.
때는 약 170만 년 전,
인류의 첫 조상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가 아프리카 동부 해안을 배회하던 시기였다.
그들은 이미 나무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걷는 법을 익혔고,
손의 안쪽에 있던 작은 ‘손가락’을 돌려 엄지(opposable thumb) 로 쓰는 법을 배웠다.
이 엄지와 손가락을 이용해 풀과 뿌리를 뽑고, 날카로운 돌도끼를 만들어
영양의 혀를 잘라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냈다.
그들이 먹던 날음식은 소화와 저작에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래서 그들은 돌로 먹이를 두들겨 부드럽게 만들었다.
특히 고기를 연하게 만들면 소화와 씹는 데 필요한 힘을 아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남는 에너지를 뇌 성장에 쓸 수 있었다.
그러다 불로 음식을 익히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약 80만 년 전, 인류는 불 위에서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했고,
이는 엄청난 양의 추가 칼로리를 방출시켰다.
이제 거친 섬유질을 분해하던 대장은 점점 짧아졌고, 그만큼 에너지가 절약되었다.
그 에너지는 다시 뇌로 향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의 뇌는
하빌리스의 그것보다 무려 50퍼센트나 더 커졌다.
우리는 점점 원숭이보다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호모 에렉투스를 브룩스 브라더스의 양복 차림으로 입혀 지하철에 태운다면, 아무도 두 번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고대의 조상들은 유전적으로 우리와 충분히 비슷해서, 아마도 우리와 아이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으깨고 조리하는 혁신에는 대가가 따랐다. 급속히 커지는 뇌는 확장할 공간이 필요했고, 그 공간을 얼굴 앞쪽—즉, 부비강과 입, 기도가 자리한 부분—에서 빼앗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 중심부의 근육은 느슨해졌고, 턱의 뼈는 약해지고 얇아졌다. 얼굴은 짧아지고 입은 작아졌으며, 그 결과 납작하게 눌린 주둥이를 대신해 새로운 돌출부가 생겨났다. 그것은 오직 우리만이 가진 특징이었고, 다른 영장류와 우리를 구분 짓는 상징이었다. **‘코’**였다.
문제는 이 작고 수직으로 위치한 코가 공기를 걸러내는 효율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병원균과 세균에 노출되었다. 더 작아진 부비강과 입은 또한 목의 공간을 줄였다. 음식을 조리하면 조리할수록, 부드럽고 고열량의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의 뇌는 더 커졌고, 기도는 점점 더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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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사바나에 등장한 것은 약 30만 년 전이었다. 그 무렵 우리는 여러 다른 인간 종들과 함께 있었다.
현재의 유럽 지역에 살며 대형 동물을 사냥하고 거처를 지은 튼튼한 체구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추운 환경에 적응해 옷을 만들고 살던, 거대한 코와 짧은 팔다리를 지닌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작은 두개골과 벌어진 엉덩이, 길게 늘어진 팔을 지닌 왜소한 체형의 호모 날레디까지.
밤이 되면 이들이 모두 모여 불가에 둘러앉은 모습은 참으로 기이했을 것이다. 마치 스타워즈의 우주 선술집 같았을 그 장면—강가의 물을 손바닥으로 떠 마시며, 서로의 머리카락에서 구더기를 골라내고, 이마의 돌출된 뼈를 비교해보며, 별빛 아래에서 종(種)을 넘나드는 사랑을 나누는 그들.
그러다 이내, 더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코가 큰 네안데르탈인도, 왜소한 날레디도, 두꺼운 목의 하이델베르겐시스도 모두 사라졌다.
질병이든, 기후든, 서로 간의 다툼이든, 혹은 단순한 게으름 때문이든, 이유는 다양했을 것이다.
인류의 긴 계보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종은 단 하나, 바로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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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지역에서는 코가 점점 좁고 길어져, 폐로 들어가기 전 공기를 더 효율적으로 데울 수 있게 되었다.
피부는 햇빛을 더 받아들여 비타민 D를 생성하기 쉽게 하려고 밝아졌다.
반대로 더운 지역에서는 넓고 납작한 코가 발달해, 뜨겁고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기 쉬워졌고,
피부는 태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짙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체의 후두(larynx)—음식이 기도로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는 밸브 역할을 하는 기관—는 아래로 내려왔다.
그 이유는 또 하나의 적응, ‘언어’ 때문이다.
모든 동물, 그리고 다른 모든 호모 종의 후두는 목의 윗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높은 후두는 효율적이었다. 무언가가 기도로 잘못 들어가면 즉시 배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말을 하게 되면서 후두는 점차 내려앉았다.
그 결과 입안 뒤쪽에 더 넓은 공간이 생겼고, 우리는 훨씬 다양한 소리를, 더 큰 음량으로 낼 수 있게 되었다.
작고 얇은 입술은 소리를 다루기 쉬웠고, 그렇게 우리의 입술은 덜 두껍고 더 유연하게 진화했다.
보다 민첩한 혀는 미세한 발음을 조절하기 좋았고, 혀는 목 깊숙이로 내려가면서 턱을 앞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낮아진 후두는 원래의 기능, 즉 ‘기도 보호’에는 비효율적이었다.
입 뒤쪽의 공간이 지나치게 넓어지면서 인간은 쉽게 **‘질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음식을 너무 크게 삼키면 숨이 막혔고, 너무 빨리 삼켜도 그랬다.
이제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도, 다른 어떤 인간 종도 겪지 않는—
자신의 음식에, 그리고 때로는 자기 몸에 질식해 죽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조상들을 다른 동물보다 더 영리하고 유능하게 만든 바로 그 적응—
불의 사용, 음식의 조리, 거대한 뇌, 그리고 언어 능력—은
결국 우리의 입과 목을 막히게 만들었고, 숨 쉬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 ‘뒤로 물러난 성장’은 훗날 우리가 잠든 사이 코골이를 하거나
자기 몸에 질식하게 되는 체질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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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문제들은 초기 인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수만 년 동안 우리의 조상들은 커다란 머리를 가지고도 아무 문제 없이 숨 쉬었다.
코와 목소리, 그리고 거대한 뇌를 무기로 삼은 인간은 마침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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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에번스를 찾아갔던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우리 털투성이 조상들을 떠올렸다.
아프리카 해안의 바위 위에 쪼그려 앉아, 유연한 입술로 첫 모음을 내뱉으며,
넓게 열린 콧구멍으로 바람을 들이마시고, 완벽히 고른 치열로 토끼 고기를 씹던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지금의 나는—
LED 조명 아래에서 입을 반쯤 벌리고, 스마트폰으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위키페이지를 읽으며,
비뚤어진 치아로 저탄수화물 에너지바를 씹다가 기침을 하고,
막힌 코 때문에 숨 한 번 제대로 들이마시지 못하고 있다.
스탠퍼드에서 진행 중인 ‘입으로만 숨 쉬기 실험’ 이틀째 저녁,
나는 코 구멍 안쪽에 실리콘 마개를 꽉꽉 채운 채, 테이프로 봉인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다.
며칠째 이 상태로 지내다 보니, 아내에게는 민폐일 것 같아 손님방으로 옮겼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동굴인류를 떠올리다 잠들지도 못한 채, 이곳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 손목에는 성냥갑만 한 크기의 맥박산소측정기가 차 있다.
거기서 뻗은 붉은 빛의 선이 가운데 손가락까지 이어져,
몇 초마다 내 심박수와 혈중 산소 농도를 기록한다.
그 데이터를 통해 내 혀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이 목구멍을 막는지—
즉, 수면무호흡이 얼마나 심한지를 측정한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의 심각도를 알아보기 위해,
나는 밤새 내 숨소리를 기록하는 스마트폰 앱을 설치했다.
앱은 아침마다 내 호흡 상태를 분 단위로 분석한 그래프를 보여준다.
침대 위 천장에는 적외선 카메라가 내 모든 뒤척임을 감시한다.
목의 염증과 비강의 폴립은 코골이와 무호흡을 유발한다.
비강이 막히면 이런 증상은 더 심해진다.
하지만 그 피해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이전까지 아무도 실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험 첫날 밤, 코를 막고 잔 결과 내 코골이 시간은 **1,300%**나 증가했다.
총 75분 동안 코를 골았다.
올슨의 수치는 더 끔찍했다. 0분에서 4시간 10분으로 폭증했다.
내 수면무호흡 발작도 4배 늘어났다.
단 24시간 만의 변화였다.
지금, 다시 이불 속에 누워보지만
아무리 마음을 진정시키고 실험에 순응하려 해도 쉽지 않다.
3.3초마다 한 번씩, 걸러지지 않고, 가습되지 않고, 데워지지도 않은 공기가 입으로 밀려 들어온다.
혀는 바짝 마르고, 목은 쓰라리고, 폐는 점점 짜증을 낸다.
이제 17만 5천 번의 숨이 남았다.
2
입으로 숨쉬기
오전 8시 15분, 올슨이 아래층 아파트 옆문을 크레이머처럼 벌컥 열고 뛰어들어왔다.
“좋은 아침이야!” 그가 외쳤다.
그는 코에 실리콘 공 모양의 마개를 꽂은 채, 헐렁한 운동복 반바지와 ‘애버크롬비&피치’ 스웨트셔츠 차림이었다.
올슨은 나와 마주보는 길 건너편에 한 달짜리 스튜디오를 빌려 살고 있었다.
잠옷 차림 그대로 슬쩍 건너오기엔 가까웠지만, 이상한 복장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않기엔 또 너무 멀었다.
한때 건강한 구릿빛이던 얼굴은 이제 핼쑥하고 창백해져, 마치 게리 뷰시의 머그샷 사진을 보는 듯했다.
그 표정도 며칠째 그대로였다 — 멍한 눈빛, 그리고 어딘가에 쫓기는 사람 같은 웃음.
오늘은 실험의 ‘입호흡 단계’가 절반을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올슨은 하루 세 번 — 아침, 점심, 저녁 — 나와 마주 앉았다.
하나, 둘, 셋.
우리는 탁자 위에 덕지덕지 얹힌 삐삐 울고 부르르 떨리는 기계 더미의 전원을 켜고, 팔에 혈압 커프를 감고, 귓불에 심전도 센서를 붙이고, 입속에 체온계를 문 채 데이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입으로 숨쉬기가 우리의 건강을 망치고 있었다.
내 혈압은 실험 전보다 평균 13포인트나 상승해 1기 고혈압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박 변이도는 급격히 떨어져, 내 몸이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맥박은 빨라졌고, 체온은 낮아졌으며, 정신은 안개 속처럼 흐릿해졌다.
올슨의 수치 또한 내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건 숫자가 아니라 ‘느낌’이었다.
몸이 엉망이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졌다.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 마지막 검사를 마친 올슨은 호흡기를 벗고,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뒤 실리콘 마개를 코 깊숙이 밀어 넣는다.
그는 다시 스웨트셔츠를 입으며 “열시 반에 보자.” 하고 말하고는 문밖으로 나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슬리퍼를 끌고 복도를 지나 길 건너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마지막 실험 항목은 식사였다.
두 단계의 실험 동안 우리는 같은 시간에 같은 음식을 먹고, 혈당을 연속 측정하면서 하루 동안 걸음 수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다.
입호흡과 비강호흡이 체중이나 대사에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보기 위해서다.
오늘 메뉴는 달걀 세 개, 아보카도 반 개, 독일식 호밀빵 한 조각, 그리고 라프상 홍차 한 주전자.
즉, 열흘 후에도 나는 같은 부엌에서 똑같은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설거지를 하고, 거실 실험실에 널려 있는 필터와 pH 시험지, 포스트잇을 치운다.
메일을 몇 통 확인하고 나면, 올슨과 함께 ‘코를 더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을 찾는 실험을 하기도 한다.
방수용 귀마개(너무 딱딱하다), 폼 귀마개(너무 물렁하다), 수영용 코집게(너무 아프다), CPAP용 코 패드(편하긴 하지만 꼴이 우스꽝스럽다), 화장지(너무 헐겁다), 껌(너무 끈적이다).
결국 실리콘이나 폼 귀마개 위에 수술용 테이프를 덧붙이는 방법으로 정착했다.
숨이 막히고 코 주변이 쓸리지만, 그나마 덜 끔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 — 지난 닷새 내내 — 올슨과 나는 각자의 방에서 그저 ‘삶을 미워하며’ 앉아 있었다.
마치 아무도 웃지 않는 우울한 시트콤 속에 갇힌 듯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그라운드호그 데이>의 하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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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오늘은 조금 다르다.
오늘은 자전거를 탄다.
바닷가 산책로나 금문교 그늘 아래가 아닌, 형광등이 내리쬐는 콘크리트 벽 속 헬스장에서.
자전거 타기는 올슨의 제안이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격렬한 운동 중 ‘코로 숨쉬는 사람’과 ‘입으로 숨쉬는 사람’의 수행 능력을 비교하는 연구를 해왔다.
크로스핏 선수들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도 하고, 코치들과 협업도 했다.
그는 입호흡이 몸을 스트레스 상태로 몰아넣어 쉽게 피로하게 만들고, 운동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험의 각 단계마다 며칠은 자전거를 타며, 최대 유산소 한계까지 몸을 몰아붙이기로 했다.
오늘의 집합 시간은 오전 10시 15분, 헬스장.
나는 반바지를 입고, 피트니스 트래커와 여분의 실리콘 마개, 물병을 챙겨 뒷문으로 나섰다.
울타리 곁에는 안토니오가 있었다.
집 2층 리모델링을 맡은, 오래된 친구이자 계약자였다.
그가 나를 보더니, 내가 얼른 정원 쪽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코에 꽂힌 분홍색 귀마개를 발견하고, 들고 있던 각목을 내려놓더니 다가왔다.
안토니오와는 15년 넘게 알고 지냈다.
내가 취재차 외딴 곳을 돌아다닌 기묘한 이야기들을 늘 흥미로워했다.
하지만 이번 실험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이건 나쁜 짓이야.”
그가 말했다.
“우리 학교 때 말이야, 애들이 입으로 숨 쉬면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면서 퍽퍽—”
그는 자기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입으로 숨쉬면 맞았어. 병 걸린다고. 무례한 짓이었거든.”
그가 자란 멕시코 푸에블라에서는 모두가 코로 숨쉬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안토니오의 아내 자넷은 만성 비염과 콧물로 고생 중이고, 자넷의 아들 앤서니도 입호흡 습관 때문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나도 계속 얘기해. 그거 나쁘다고. 고치려 해보지만, 쉽지 않지.”
그가 한숨을 쉬었다.
며칠 전 금문교 위에서 올슨과 함께 코를 막은 채 달리던 중, 인도계 영국인 데이비드라는 남자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우리의 코밴드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난 평생 코가 막혀 있었어요. 항상 막혀 있거나 흐르거나, 제대로 열린 적이 없었죠.”
그는 20년 동안 온갖 약을 코에 뿌려왔지만 점점 효과가 줄었다고 했다.
이제는 만성 호흡기 질환까지 생겼다고.
비슷한 사연을 더 듣지 않으려면,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나는 꼭 필요할 때만 밖으로 나가게 됐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괴짜’에게 관대하다.
하이트가의 거리에는 바지 뒤에 구멍을 내고, 다섯 인치짜리 사람 꼬리를 흔들며 걷던 남자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를 보고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올슨과 내가 코에 테이프를 붙이고 마개를 꽂은 채 돌아다니는 모습은 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어딜 가든 사람들은 묻거나, 혹은 자신의 호흡 고통담을 쏟아냈다.
“코가 늘 막혀서요.”
“알레르기가 점점 심해져요.”
“머리가 아프고 잠도 못 자요.”
입호흡이 심해질수록, 증상도 악화된다는 하소연이었다.
나는 안토니오에게 손을 흔들고, 야구모자 챙을 조금 더 내려 코를 가렸다.
그리고 몇 블록을 달려 헬스장에 도착했다.
트레드밀 위에서 빠르게 걷는 여성들, 웨이트 기구를 당기는 노인들 사이를 지나치며 나는 그들을 바라봤다.
모두 입으로 숨쉬고 있었다.
나는 맥박 산소 측정기를 켜고, 스톱워치를 맞춘 뒤, 고정식 자전거 위에 올라탔다.
페달에 신발을 고정시키고, 발로 한 번 꾹 밟자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번 자전거 실험은 20여 년 전, 엘리트 운동선수들을 지도하던 존 두야드 박사가 수행한 여러 연구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부터 철인 3종 경기 선수, 그리고 뉴저지 네츠 팀 선수들까지 다양했다.
1990년대 초, 두야드는 입호흡이 선수들의 경기력을 해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프로 사이클리스트들을 모아 심박수와 호흡수를 측정하는 센서를 부착하고, 고정식 자전거 위에 앉혔다.
그리고 페달의 저항을 단계적으로 높여가며 운동 강도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모든 참가자에게 입으로만 숨쉬라고 지시했다.
운동 강도가 올라갈수록 호흡 속도도 빨라졌고, 이는 예상된 반응이었다.
마지막 단계인 200와트 부하 구간에 이르자, 선수들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후 두야드는 실험을 다시 진행하되, 이번에는 코로만 숨쉬게 했다.
놀랍게도, 운동 강도가 올라갈수록 오히려 호흡수는 감소했다.
200와트 부하에 도달했을 때, 한 선수는 입호흡 시 분당 47회에 달하던 호흡수를 코호흡 시 14회로 줄였다.
심박수는 처음과 거의 변함이 없었다. 운동 강도가 열 배로 증가했음에도 말이다.
두야드는 보고했다.
“단지 코로 숨쉬도록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에너지 소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지구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실제로 선수들은 입호흡 때보다 훨씬 덜 지치고, 오히려 상쾌함을 느꼈다.
그날 이후, 그들 모두는 다시는 입으로 숨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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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 30분 동안 두야드의 실험 절차를 따를 예정이었다.
단, 무게 대신 ‘거리’를 지표로 삼는다.
심박수를 1분당 136회로 고정한 상태에서, 코를 막고 입으로만 숨쉬며 얼마나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며칠 뒤 올슨과 나는 다시 헬스장에 와서 같은 조건으로 반복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단 이번에는 코로만 숨쉬기로 바꾼다.
이 데이터를 통해 두 가지 호흡 방식이 지구력과 에너지 효율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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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중 호흡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인체가 ‘공기와 음식’으로부터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내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산소가 있을 때 일어나는 ‘호기성 호흡(aerobic respiration)’과, 산소가 부족할 때 작동하는 ‘무산소 호흡(anaerobic respiration)’이다.
무산소 에너지는 포도당(단당류)을 연료로 하며, 빠르고 쉽게 쓸 수 있다.
산소가 모자랄 때를 위한 일종의 비상 발전기이자 터보 부스터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효율이 낮고, 젖산을 과도하게 만들어 몸에 독성을 남긴다.
헬스장에서 너무 무리한 뒤 느끼는 구역감, 근육의 힘 빠짐, 식은땀은 모두 이 무산소 과부하의 신호다.
격렬한 운동 초반 몇 분이 유난히 괴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폐와 호흡계가 아직 산소 공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동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몸이 ‘워밍업’된 뒤 한결 편안해지는 이유는,
그제야 몸이 무산소 → 유산소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 두 에너지 시스템은 서로 다른 근육 섬유에서 만들어진다.
무산소 호흡은 비상용이기에, 우리 몸에는 그런 근육 섬유가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이 근육들을 너무 자주, 무리하게 사용하면 결국 손상된다.
매년 새해가 시작될 때 헬스장에서 부상자가 폭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강도로 운동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무산소 에너지는 ‘머슬카’ 같다 — 짧은 거리에서는 빠르고 강력하지만, 오염이 심하고 장거리 주행에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유산소 호흡이 중요하다.
25억 년 전 산소를 먹기 시작한 그 미생물들 덕분에 생명이 폭발적으로 번성했다.
그들의 후손인 세포가 지금 우리 몸 안에 약 37조 개나 존재한다.
이 세포들이 산소를 연료로 작동할 때, 무산소 상태보다 약 16배 효율적인 에너지를 낸다.
운동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이 ‘청정 연료 구역’, 즉 유산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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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으로 돌아와 나는 페달을 조금 더 세게 밟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심박수가 112, 114,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며 136에 근접한다.
예열 시간 3분 동안, 목표는 정확히 136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수치는 내 나이에 해당하는 유산소·무산소 경계선에 해당한다.
1970년대, 올림픽 선수와 울트라마라토너들을 지도하던 필 마페톤 코치는
표준화된 운동법이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했다.
사람마다 신체 조건과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팔굽혀펴기 100개가 훌륭한 운동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겐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마페톤은 심박수 중심의 개인화 훈련법을 도입했다.
선수들이 자신의 유산소 구역 안에서 운동하도록 해,
지방을 더 효율적으로 태우고, 회복을 빠르게 하며, 다음 날 또다시 운동할 수 있게 했다.
그가 제시한 유산소 한계치 계산법은 간단했다.
180에서 자신의 나이를 빼라.
그 수치가 유산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심박수다.
운동은 이보다 낮은 수준에서 오래 지속할 수 있지만, 절대 초과해선 안 된다.
그 선을 넘으면 몸은 장시간 무산소 영역에 머물게 되고,
운동 후 개운함 대신 피로감·떨림·메스꺼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바로 그게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30분간 필사적으로 페달을 밟고, 입을 벌린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쉰 끝에
자전거의 타이머가 0으로 떨어졌다.
기계음이 멈추고, 기어가 서서히 느려졌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고, 눈이 흐릿해졌다.
총 주행 거리는 겨우 6.44마일이었다.
나는 자전거에서 몸을 일으켜 내려오고, 올슨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물 한 잔을 마신 뒤, 다음 실험을 준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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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올슨과 내가 코를 막기 전부터
과학자들은 이미 입호흡의 득과 실을 실험하고 있었다.
1960년대 영국의 의사 오스틴 영은, 만성 코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예 콧구멍을 봉합하는 수술을 시도했다.
그의 후계자 발레리 J. 런드는 1990년대에 이 시술을 되살려 수십 명의 환자에게 적용했다.
나는 런드에게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 환자들이 수주, 수개월, 수년 뒤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다행히 그 결과를 보여주는 또 다른 연구가 있었다.
노르웨이계 미국인 치과 교정학자이자 연구자인 에길 P. 하볼드의 실험이다.
하볼드가 1970~80년대에 수행한 연구는
오늘날 동물보호단체는 물론, 동물을 사랑하는 그 누구도 용납하지 못할 끔찍한 것이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연구실에서 붉은털원숭이 여러 마리를 데려와
그중 절반의 콧속 깊숙이 실리콘을 주입해 완전히 막았다.
남은 절반은 그대로 두었다.
코가 막힌 원숭이들은 마개를 빼낼 수 없었고,
결국 평생 입으로만 숨쉬며 살아야 했다.
6개월 동안 하볼드는 원숭이들의 치열, 턱 각도, 얼굴 길이 등을 측정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코가 막힌 원숭이들은 모두 얼굴이 길게 아래로 처지고,
치열이 좁아지며, 치아가 삐뚤어지고, 입이 늘 벌어진 상태로 변했다.
그는 실험을 2년 동안 반복했고, 결과는 더 참혹했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사진들은 차마 보기 힘들다.
불쌍한 원숭이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 변화가 인간의 얼굴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만에 얼굴은 길어지고, 턱은 처지고, 눈은 초점을 잃은 듯 멍해졌다.
입으로 숨을 쉬는 행위는, 알고 보면 신체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며 기도(氣道)를 변형시키는데—그 방향은 결코 좋은 쪽이 아니다.
입을 통해 공기를 들이마시면 공기압이 낮아지면서 입안 깊숙한 연조직이 느슨해지고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호흡 통로가 좁아진다. 결국 숨쉬기가 더 어려워지고, 입호흡은 또 다른 입호흡을 부르게 된다.
반대로 코로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코로 들이마신 공기가 목구멍 뒤쪽의 늘어진 조직을 밀어내면서 기도가 넓어지고, 호흡이 한결 수월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이 부위의 근육과 조직은 ‘단련’되어 자연스럽게 열린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즉, 코호흡은 또 다른 코호흡을 낳는다.
“코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입, 기도, 그리고 폐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전화 인터뷰 중 아일랜드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세계적인 코호흡 전문가 패트릭 매큐언(Patrick McKeown)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각각 따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하나로 연결된 ‘통합된 기도 시스템’이에요.”
이는 놀랄 일도 아니다. 계절성 알레르기가 찾아올 때 수면무호흡증과 호흡 곤란이 급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가 막히면 우리는 입으로 숨을 쉬기 시작하고, 그 결과 기도가 붕괴된다. “단순한 물리 법칙이죠.” 매큐언의 말이다.
입을 벌리고 자는 것은 이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베개에 머리를 얹는 순간, 중력은 목 안의 연조직과 혀를 아래로 잡아당겨 기도를 더욱 좁힌다. 이렇게 자는 자세가 오래 지속되면, 기도는 결국 그 형태에 ‘익숙해져서’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이 새로운 정상으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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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막은 실험의 마지막 밤, 나는 또다시 침대에 앉아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태평양 바람이 불어올 때면—대부분의 밤이 그렇듯—침실 맞은편 벽에 비친 나뭇잎과 식물의 그림자가 색감이 섞인 만화경처럼 춤을 춘다. 잠시 후 그것들은 조끼를 입은 에드워드 고리의 신사 무리로 변했다가, 곧 에셔의 꼬인 계단으로 바뀐다. 또 한 번의 바람이 불면, 그것들은 다시 부게인빌레아와 대나무 잎, 고사리의 실루엣으로 흩어졌다.
길게 말하자면, 나는 잠들 수가 없었다. 베개를 여러 개 겹쳐 머리를 괴고, 이 기묘한 풍경을 메모하며 15분, 20분, 어쩌면 40분째 깨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코를 훌쩍이며 막힌 비강을 뚫어보려 했지만, 돌아온 건 머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부비동 두통—내가 자초한 고통이었다.
지난 열흘 남짓한 밤마다, 나는 마치 누군가에게 천천히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 속에서 잠들었다. 실제로 내 목구멍은 좁아지고 있었고, 나는 점점 더 질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호흡을 강제당한 내 몸은, 하볼드 박사의 원숭이들처럼 기도의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몇 달이 아니라 단 며칠 만에 일어나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내 코골이는 열흘 전보다 **4,820%**나 증가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나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최악의 경우, 나는 한 시간에 평균 25회 정도 ‘무호흡 사건(apnea events)’을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산소 포화도가 85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산소 포화도가 90퍼센트 밑으로 내려가면, 혈액은 신체 조직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산소를 실을 수 없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심부전, 우울증, 기억력 저하, 심지어 조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 수치가 의학적 진단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분명히 악화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올슨과 나는 전날 밤의 수면 녹음을 함께 들었다. 처음엔 웃었지만, 곧 공포로 바뀌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취한 사람의 코골이’가 아니라, 자기 몸에 목 졸려 죽어가는 남자의 신음이었다.
“입을 다문 채로 자는 것이 훨씬 건전하다.”
16세기 네덜란드의 의사 레비누스 렘니우스(Levinus Lemnius)는 코골이에 대한 최초의 연구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미 그 시대에, 수면 중 기도가 막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자는 자들은, 공기가 이리저리 오가며 혀와 입천장을 마르게 하기에, 밤새 물을 찾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입호흡은 수분 손실을 40퍼센트 더 늘린다. 그 결과 나는 매일 밤 심하게 목이 말라 자주 깼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수분이 빠져나가면 오히려 소변량이 줄어야 할 것 같지만,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장 깊고 회복적인 수면 단계에서, 뇌하수체는 여러 호르몬을 분비한다. 아드레날린, 엔도르핀, 성장호르몬, 그리고 바소프레신(vasopressin). 이 호르몬은 세포에 물을 저장하라고 지시한다. 동물이 밤새 목마르지 않고 소변을 참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깊은 잠에 들 시간이 부족하면—즉, 만성 수면무호흡 상태가 되면—바소프레신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다. 그러면 신장은 물을 방출하고, 우리는 밤새 소변이 마렵고 목이 타게 된다. 이게 바로 내 ‘예민한 방광’과 ‘끝없는 갈증’의 원인이었다.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의 끔찍한 건강 영향을 다룬 책은 많다. 이런 문제들이 야뇨증, ADHD, 당뇨, 고혈압, 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메이요클리닉 보고서에서, 오래도록 심리적 문제로만 여겨졌던 만성 불면증이 사실은 ‘호흡 문제’인 경우가 많다는 내용을 읽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나처럼 창문이나 TV, 휴대폰,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코골이에 ‘정상적인 정도’란 없다.
스탠퍼드 대학의 수면 연구자 크리스티앙 기에르미노(Christian Guilleminault) 박사는, 수면 중 무호흡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단순한 코골이”만으로도 기분 장애, 혈압 이상, 학습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입호흡은 나를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최근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코를 막아 입호흡만 하게 된 쥐들이 신경세포 수가 줄고, 미로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3년의 또 다른 일본 연구에서는, 입호흡이 인간의 전전두엽(집중력과 주의력과 관련된 부위)에 산소 공급 장애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 코호흡에는 그런 영향이 전혀 없었다.
고대 중국인들도 이미 이를 알고 있었다.
“입으로 들이마신 숨을 ‘니치(逆氣, 거스르는 기운)’라 하며, 이는 지극히 해롭다.”
『도덕경』의 주석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지 않도록 조심하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이며, 또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누워 있는 나는, 그나마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해보려 애쓴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을 준 마리애나 에번스(Marianna Evans)의 해골 하나가 떠올랐다.
• • •
아침이었다. 필라델피아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 삼십 분 거리, 에번스의 교정의학 클리닉 사무실. 그녀는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흰 벽, 흰 타일 바닥, 깨끗하고 냉정한 분위기—미래의 실험실 같았다. 내가 지금껏 다녔던 금붕어 수조와 고사리 화분, 그리고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으로 장식된 평범한 치과들과는 전혀 달랐다. 에번스의 진료실은 ‘다른 세계’였다.
그녀는 모니터에 두 장의 이미지를 띄웠다. 하나는 모턴 컬렉션(Morton Collection)에 소장된 고대 해골, 다른 하나는 새로운 환자—일곱 살가량의 소녀 ‘지지(Gigi, 가명)’의 얼굴이었다.
사진 속 지지의 치아는 잇몸 위에서 사방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입술은 마르고 벌어진 채, 마치 보이지 않는 막대사탕을 문 것 같았다. 눈 밑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고, 그녀는 만성 코골이와 부비동염, 천식을 앓고 있었다. 최근엔 음식과 먼지, 애완동물 털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식단은 식품피라미드에 맞게 균형 잡혔고, 바깥활동도 충분했으며, 예방접종을 빠짐없이 받았고 비타민 D와 C를 복용했다. 성장기에 별다른 병력도 없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이랬다.
“이런 아이들을 하루 종일 봅니다.” 에번스가 말했다. “전부 다 비슷해요.”
그리고 사실, 그녀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날 아이들의 90퍼센트가 구강과 비강의 어떤 형태적 변형을 가지고 있다. 성인의 45퍼센트는 가끔 코를 골고, 25퍼센트는 매일같이 코를 곤다. 30세 이상 미국 성인의 4분의 1은 수면 중 스스로의 몸에 질식하고 있으며, 중등도 이상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80퍼센트는 아직 진단조차 받지 못한 상태다. 대부분의 인류가 어떤 형태로든 호흡 저항이나 장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도시를 정화했고, 조상들을 괴롭히던 수많은 질병을 억제하거나 없애버렸다. 더 똑똑해졌고, 키가 커졌으며, 평균적으로 훨씬 오래 산다. 지금 인류는 1만 년 전보다 천 배나 많은 75억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생리 기능—‘호흡’—을 잃어버렸다.
에번스가 그려낸 그림은 암울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반짝이는 현대식 진료실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완벽한 형태의 고대 두개골과 나란히 놓인 화면을 바라보며 그 아이러니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 고대 표본의 주인공들은 생전에 “퇴화된 인종들”이라며 멸시받던 이들이었지만, 지금 내 앞의 현대인 얼굴들은 오히려 그들의 ‘이상적 형태’를 잃어버린 채 뒤틀려 있었다. 나는 모니터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어긋난 두개골, 가라앉은 턱, 막힌 코, 이빨이 다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입.
‘바보들 같으니라구.’
순간, 고대 해골이 나를 비웃는 듯 보였다. 아니, 확실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에번스가 나를 부른 이유는 단순히 ‘현대인의 퇴화’를 한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이토록 집요하게 인류의 호흡 변화를 추적해온 이유는,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에번스는 동료 케빈 보이드(Kevin Boyd)와 함께 수년간, 그것도 개인 사비를 들여 연구를 지속해왔다. 그들은 고대 두개골에서 얻은 수백 가지 계측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기도 건강 모델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폴루모넛(pulmonauts, 폐 탐험가)’이라 불리는 신흥 연구 집단의 일원으로, 호흡법·폐 확장·교정의학·기도 발달 분야의 새로운 치료법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지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본래의 인간 형태’로 되돌리는 것.
모든 것이 망가지기 전, 우리의 조상이 숨 쉬던 그 방식으로.
모니터 화면에 또 한 장의 사진이 떴다.
역시 지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 밑 그늘도, 창백한 피부도, 처진 눈꺼풀도 없었다.
치아는 가지런했고, 얼굴은 넓고 밝게 빛났다.
그녀는 다시 코로 숨을 쉬고 있었고, 코골이는 사라졌다. 알레르기와 호흡기 질환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 사진은 첫 번째 사진으로부터 2년 후의 모습이었다.
지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런 변화는 비단 지지뿐 아니라, 올바른 호흡을 되찾은 다른 환자들—어른과 아이 모두—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쳐졌던 턱선과 좁아졌던 얼굴이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갔고,
혈압이 내려갔으며, 우울감이 사라지고, 두통이 없어졌다.
심지어 하볼드의 원숭이들도 회복했다.
2년간의 강제 입호흡 실험이 끝나자, 그는 실리콘 마개를 제거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코로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웠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과 기도 역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변했다.
턱은 앞으로 이동했고, 얼굴과 기도는 본래의 넓고 건강한 형태를 되찾았다.
실험이 끝난 지 6개월 후, 원숭이들은 다시 원래의 원숭이 얼굴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제 정상적으로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나는 다시 침대 위에서, 창문 너머 나뭇가지 그림자가 만드는 그림자극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나는 바랐다.
지난 열흘, 아니 사십 년 동안 내 몸에 생긴 손상을 되돌릴 수 있기를.
조상들이 숨 쉬던 그 방식으로 다시 호흡할 수 있기를.
곧 알게 되겠지.
내일 아침이면, 이 마개들이 빠질 테니까.
3장
코 (NOSE)
“꼴이 말이 아니네요.”
나약 박사가 말했다.
이른 오후, 나는 다시 스탠퍼드대학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센터의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진료용 의자에 몸을 늘어뜨린 채, 나약 박사가 내 오른쪽 콧구멍 안으로 내시경을 밀어 넣고 있었다.
열흘 전, 사막의 매끈한 모래 언덕처럼 보이던 내 비강은 지금 완전히 초토화돼 있었다.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자.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이제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재채기를 하거나 도망칠 생각을 하기 전에, 그는 금속 솔을 집어 들어 내 머리 안 몇 인치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안이 아주 걸쭉하네요.”
그는 약간 흡족한 듯 말했다.
그는 왼쪽 콧구멍에서도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점액으로 뒤덮인 RNA 브러시들을 시험관에 담은 뒤, 나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지난 열흘 반 동안, 나는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플러그와 테이프, 솜뭉치를 제거하는 순간이야말로 해방의 축제일 줄 알았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코로 숨을 쉬며 환호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드디어 인간답게 숨을 쉴 수 있겠구나!”
하지만 현실은, 몇 분의 불쾌감 뒤에 찾아온 또 다른 막힘이었다.
내 코는 너무 엉망이라, 나약 박사는 아예 **플라이어(집게)**를 꺼내 양쪽 콧속 깊숙이 면봉 여러 개를 꽂아 넣어야 했다.
안의 내용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말이다.
그 뒤로는 다시 폐 기능 검사, 엑스레이, 채혈, 그리고 비강 전문의 검진까지—
나와 울슨이 코막음 실험 전에 받았던 모든 절차를 다시 반복했다.
결과는 몇 주 뒤에 나올 예정이다.
—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여러 번 비강 세척을 하고 나서야, 나는 코로 들이마시는 첫 온전한 한숨을 느낄 수 있었다.
겉옷을 걸치고 맨발로 뒷마당에 나갔다.
밤하늘에는 거대한 우주선처럼 흰 깃털 구름이 떠 있었고, 그 위로는 몇몇 별들이 안개를 뚫고 솟아올라, 차오르는 달 주위에 모여 있었다.
나는 가슴속의 묵은 공기를 내쉬고, 천천히 들이마셨다.
흙에서 나는 시큼한 양말 냄새,
축축한 현관매트의 검은 라벨 챕스틱 향,
레몬나무에서 풍기는 락스 냄새 같은 향기,
그리고 죽어가는 낙엽의 감초 냄새.
그 모든 향이 머릿속에서 테크니컬러 폭죽처럼 터졌다.
그 냄새들이 너무 생생해서, 거의 눈에 보이는 듯했다.
쇠라의 점묘화처럼, 수십억 개의 색점이 머릿속에서 빛났다.
나는 상상했다.
이 모든 분자들이 내 목을 타고 내려가, 폐로 들어가, 혈류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그 작은 입자들이 사유와 감각의 연료가 되어, 다시 내 존재를 형성하는 과정을.
후각은 생명이 가진 가장 오래된 감각이다.
그 밤, 홀로 서서 콧구멍을 벌린 채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깨달았다.
호흡이란 단순히 공기를 들이쉬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세상과 맺는 가장 친밀한 연결이었다.
우리—당신, 나,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지금껏 입으로, 코로, 피부로 들이마신 모든 물질은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존재해온 낡은 별가루다.
그 별가루는 태양빛에 쪼개지고, 우주에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숨을 쉰다는 것은 그 우주의 조각들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세상을 흡수하고, 이해하며, 다시 내 일부를 내보내는 일.
호흡(Respiration)은 곧 ‘되갚음(Reciprocation)’이다.
그리고 나는 희망했다.
이 ‘되갚음’이 **회복(Restoration)**으로 이어지기를.
오늘부터, 열흘간의 입호흡으로 내 몸에 가해진 손상을 치유하고, 앞으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리라.
나는 수천 년 동안 수십 명의 ‘폴루모넛(호흡 탐험가)’들이 남긴 가르침을 실천할 것이다.
그들의 방법을 하나씩 분석하고, 그 효과를 측정할 것이다.
울슨과 함께, 우리는 폐를 확장하고, 횡격막을 강화하며, 신체에 산소를 가득 채우고, 자율신경계를 조율하고, 면역 반응을 자극하며, 뇌의 화학수용체를 재설정하는 기술들을 탐구할 것이다.
그 첫걸음은 바로,
‘코로 숨쉬기.’
하루 종일, 밤낮으로.
코는 공기를 정화하고, 따뜻하게 하고, 습도를 더해 흡수를 돕는다.
이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것은,
코가 발기부전 같은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또, 코가 혈압을 낮추고, 소화를 돕는 호르몬과 화학물질을 분비할 수 있다는 사실.
심지어 여성의 생리 주기 변화에 반응하기도 한다.
코는 심박수를 조절하고, 발끝의 혈관을 확장시키며, 기억을 저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당신이 천식을 앓게 될 확률은 콧털의 밀도에 따라 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콧구멍은, 각자의 리듬에 맞춰 꽃처럼 열리고 닫히며,
그 주기는 우리의 기분, 정신 상태, 심지어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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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고대 탄트라 경전 *시바 스와로다야(Shiva Swarodaya)*는 이렇게 기록했다.
“하루 동안, 한쪽 콧구멍이 열리면 다른 쪽은 부드럽게 닫힌다.”
어떤 날은 오른쪽 콧구멍이 태양을 맞이하며 열리고,
어떤 날은 왼쪽 콧구멍이 달의 충만함을 받아 깨어난다.
경전은 말한다.
이 리듬은 한 달 내내, 그리고 인류 전체에 공통된 현상이며,
우리 몸이 우주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2004년, 인도의 외과의사 아난다 발라요기 바바나니(Dr. Ananda Balayogi Bhavanani)는
이 시바 스와로다야의 리듬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 시도했다.
그는 국제 연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달간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태양과 달의 인력이 가장 강해지는 시기,
즉 보름달과 삭월 동안에는
참가자들이 일관되게 시바 스와로다야에 기술된 리듬을 보였다.
물론 바바나니는 그 데이터가 경험적(anecdotal) 수준에 불과하며,
이를 모든 인류에게 적용하려면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의 콧구멍이 각자의 박동을 가지고 있으며,
낮과 밤, 꽃처럼 열리고 닫힌다는 사실을.
코의 비밀스러운 리듬
‘비주기(nasal cycles)’라 불리는 이 현상은 1895년, 독일 의사 리하르트 카이저(Richard Kayser)가 처음으로 기술했다. 그는 환자들의 한쪽 콧속 점막이 갑자기 부풀어 올라 막히는 동안, 다른 쪽 콧구멍은 신기하게도 열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약 30분에서 4시간 정도가 지나면, 양쪽 콧구멍의 상태가 서로 바뀌었다. 이 주기적인 전환은 달의 인력보다는 성적 충동의 영향에 더 가깝게 보였다.
코의 안쪽은 놀랍게도 음경이나 클리토리스, 유두를 덮고 있는 것과 같은 **해면체(erectile tissue)**로 덮여 있다. 코 역시 ‘발기’를 한다. 몇 초 만에 피가 몰리며 부풀고 단단해진다. 코는 인체 기관 중에서도 생식기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이 자극을 받으면 다른 쪽도 반응한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성적인 생각만으로도 코의 해면체가 심하게 부풀어 숨쉬기 힘들어지고, 재채기를 연달아 터뜨리곤 하는데, 이를 ‘허니문 비염(honeymoon rhinitis)’이라 부른다. 성적 자극이 사라지고 해면체가 이완되면, 코 역시 함께 가라앉는다.
카이저의 발견 이후 수십 년 동안, 왜 인간의 코가 해면체로 덮여 있는지, 또 왜 콧구멍이 교대로 막히고 열리는지를 명확히 설명한 이는 없었다. 몇몇 학자들은 이 현상이 잠자는 동안 몸을 이리저리 뒤집게 만들어 욕창을 예방한다고 주장했다. (베개에 닿지 않은 쪽 콧구멍으로 숨쉬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비주기가 호흡기 감염이나 알레르기로부터 코를 보호한다고 보았고, 어떤 학자들은 교대 호흡이 냄새를 더 효율적으로 맡게 해 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연구자들이 확인한 것은, 코의 해면체가 건강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실이었다. 병이 들거나 몸의 균형이 깨질 때 해면체가 쉽게 염증을 일으키고, 감염이 생기면 비주기는 훨씬 빠르게 교대로 전환되었다. 코의 양쪽 통로는 실내 냉난방 장치처럼 체온과 혈압을 조절하고, 뇌에 신경전달물질을 공급해 기분과 감정, 수면 상태를 조절했다.
오른쪽 콧구멍은 가속페달과 같다. 주로 오른쪽으로 숨을 들이쉴 때는 혈액순환이 빨라지고 체온이 오르며, 코르티솔 수치·혈압·심박수가 모두 상승한다. 이는 오른쪽 콧구멍을 통한 호흡이 교감신경계, 즉 ‘투쟁 혹은 도피(fight or flight)’ 반응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오른쪽 콧구멍으로 호흡하면 반대편 대뇌반구, 특히 언어·논리·계산을 담당하는 좌측 전전두엽으로 더 많은 혈류가 공급된다.
반대로 왼쪽 콧구멍으로 숨쉬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 일종의 브레이크처럼 작용해 체온과 혈압을 낮추고, 몸을 식히며 불안을 완화한다. 왼쪽 콧구멍은 부교감신경계, 즉 ‘휴식과 회복(rest and relax)’ 시스템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때는 혈류가 우측 전전두엽으로 이동하는데, 그곳은 창의적 사고·감정·추상적 사고·부정적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이다.
2015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한 조현병 여성의 호흡 패턴을 3년에 걸쳐 기록한 끝에, 그녀가 현저하게 왼쪽 콧구멍 호흡에 지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호흡 습관이 뇌의 우반구, 즉 ‘창조적 사고’ 영역을 과도하게 자극해 상상력을 통제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추측했다. 몇 차례의 훈련을 통해 그녀가 반대쪽, 즉 ‘논리적’ 콧구멍으로 호흡하도록 가르치자, 환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우리의 몸은 행동과 이완, 몽상과 이성적 사고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이룰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이 균형은 비주기에 의해 영향을 받고, 어쩌면 그것에 의해 조절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다.
요가에서는 강제로 콧구멍 호흡을 조절해 신체 기능을 다스리는 수행법이 있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나디 쇼다나(nadi shodhana)**라고 부르는데, *‘나디’는 경로(channel)*를, *‘쇼다나’는 정화(purification)*를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교대 비호흡(alternate nostril breathing)’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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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막 그 ‘교대 비호흡’을 몇 분째 비공식적으로 실험 중이다.
‘코로만 숨쉬기’ 훈련의 회복 단계, 둘째 날. 거실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앉아 오른쪽 콧구멍으로 부드럽게 숨을 들이마신 뒤, 다섯 초간 멈췄다가 천천히 내쉰다.
교대 비호흡에는 수십 가지 방법이 있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시작했다. 왼쪽 콧구멍을 검지로 막고, 오른쪽 콧구멍으로만 들이쉬고 내쉰다. 오늘은 식사 후마다 이 동작을 스무 번 정도 반복해 몸을 덥히고 소화를 돕는다. 식사 전이나 휴식을 원할 때는 반대로 왼쪽 콧구멍을 열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집중력과 신체·정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리야 베다 프라나야마(Surya Bheda Pranayama)’라는 방식도 병행했다. 오른쪽으로 들이쉬고 왼쪽으로 내쉬는 호흡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다.
이 연습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묘한 평온감이 찾아왔다. 놀랍게도 역류성 식도염 증상도 전혀 없었고, 속이 불편한 일도 없었다. 교대 비호흡이 이런 효과를 주는 듯했지만, 그 효과는 대개 30분 남짓으로 짧았다.
진정한 변화는 지난 24시간 동안, 내 몸이 자연스럽게 비주기에 따라 공기 흐름을 스스로 조절하게 되었을 때 일어났다. 코의 해면체가 본래의 리듬을 되찾고, 뇌와 몸이 필요로 하는 대로 공기 흐름을 바꾸도록 놔둔 것이다.
그저 코로 숨을 쉰 결과였다.
그때 올슨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좋은 오후네!”
그는 반바지에 애버크롬비 스웨트셔츠 차림으로 내 맞은편에 털썩 앉으며, 오른팔에 혈압 측정기를 감았다. 지난 열한 날 동안 매일 같은 자세, 거의 같은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코에는 더 이상 밴드나 집게, 실리콘 마개가 없었다. 그는 자유롭게 코로 숨을 쉬며, 고요하고 고른 리듬으로 들이쉬고 내쉬었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몸에는 에너지가 넘쳐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처음엔 우리의 밝아진 기분이 단순히 심리적인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분 뒤 측정 결과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내 수축기 혈압은 열흘 전 142에서 124로 내려갔다. 2단계 고혈압에서 거의 정상 범위로 돌아온 것이다. 심박수 변동성(HRV)은 150% 이상 증가했고, 이산화탄소 수치도 약 30% 상승해, 어지럼증과 손끝 저림, 혼란을 일으키던 저탄산증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올슨 역시 비슷한 개선을 보였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맥동하는 비주기는 코의 기능 중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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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앞에 당구공 하나를 들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공을 천천히 얼굴 정중앙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고 할 때, 그 공이 차지하는 부피—약 6입방인치—는 성인의 코 속, 모든 공동과 통로를 합친 전체 공간의 크기와 거의 같다.
한 번의 숨을 들이쉴 때, 코를 통과하는 공기 분자의 수는 지구상의 모든 해변 모래알을 합친 것보다 많다. 그 공기들은 몇 발자국 혹은 수 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다가오며, 반 고흐의 하늘처럼 소용돌이치고 휘감기며 들어온다. 초속 약 5마일의 속도로 코 속으로 흘러드는 그 공기 흐름을 지휘하는 것은 **터비네이트(turbinates)**라 불리는 여섯 개의 미로 같은 뼈다. (양쪽에 세 개씩 있다.)
이 터비네이트는 콧구멍 입구에서 시작해 눈 바로 아래까지 이어지며, 만약 이를 쭉 펼친다면 조개껍데기처럼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비갑개(nasal concha)’라는 이름도 있다. 조개가 복잡한 껍질 구조로 불순물을 걸러내고 외부 침입자를 막듯, 우리의 코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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