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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0년의 여정
그곳은 호러 영화 ⟨아미티빌의 저주⟩에 나오는 공포의 집 같았다. 벗겨진 페인트가 너덜거리는 담장, 먼지투성이의 창문, 달빛이 드리운 섬뜩한 그림자라니.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간 나는 문을 두드렸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커다란 대문니가 하얗고 눈썹이 짙은 30대 여성이 나를 반겼다. 그녀는 신발을 벗으라더니 동굴 같은 거실로 나를 안내했다. 처장에는 드문드문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산들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 옆으로 자리를 잡고, 황달에 걸린 가로등 불빛을 지나 다른 이들이 속속 걸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죄수 같은 눈빛의 남자. 앞머리로 이마를 가린 근엄한 얼굴의 남자. 이마 중앙이 아닌 곳에 삐딱하게 빨간 점을 찍은 금발의 여자. 속삭이듯 건네는 인사말과 부산한 발소리를 지우며 트럭 한 대가 ⟨종이비행기⟩ 노래를 우렁차게 틀고 지나갔다. 나는 허리띠를 끄르고 청바지 단추를 푼 후 자세를 바로 했다.
이곳에 온 건 "호흡법을 익히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쇠약해진 내 폐를 튼튼하게 하고, 지친 마음을 다독이고, 어쩌면 삶을 통찰할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악전고투했다. 작업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데다 130년 묵은 살림집은 곧 허물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작년과 재작년에 걸린 폐렴에 또 걸려 겨우 회복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숨을 쌕쌕거리며 작업을 했고, 하루 세 끼 식사를 그릇 하나로 해결하면서 소파에 구부정하니 앉아 일주일치 신문을 뒤적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 밖의 모든 면에서도 나는 완전히 진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몇 달 버티다가 결국 의사가 권한 대로 수다르샨 크리야 Sudarshan Kriya라는 호흡법 입문 강좌에 등록하게 되었다.
오후 7시, 눈썹이 짙은 여자가 문을 잠그고 사람들 무리의 한가운데 앉아, 휴대용 카세트에 테이프를 꽂고 플레이를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으라고 말했다.
스피커가 지지직거리다가 인도 억양의 남자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헬륨 가스를 들이마신 듯한 간드러진 말소리는 가락을 띠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들리질 않았다.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왔다고나 할까. 말소리가 지시를 내렸다. 느리게 코로 숨을 들이쉰 다음, 천천히 내쉬라고. 호흡에 집중하라고.
우리는 몇 분 동안 이 과정을 반복했다. 창문 아래 자리가 웃풍이 세서, 쌓아 둔 담요 가운데 하나를 집어 양말을 신은 두 발을 덮었다. 숨쉬기를 계속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좀처럼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고, 뻣뻣한 근육의 긴장도 풀리지 않았다. 전혀.
10분, 어쩌면 20분쯤 지났을 무렵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풍 건물의 낡은 마룻바닥 위를 떠도는 먼지를 마시며 이렇게 저녁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해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나없이 어둡고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죄수의 눈은 까무룩 잠에 빠진 듯했다. 근엄한 얼굴은 마려운 쉬를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빨간 점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 같은 미소를 머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설까도 싶었지만, 무례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이 강좌는 무료였다. 강사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았다. 그녀의 봉사활동은 존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고 담요를 여민 다음, 숨쉬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뭔가 달라졌다. 뭔가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것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꾸역꾸역 일어나던 잡념이 사라지고 긴장이 풀렸지만, 그것 역시 의식하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를 훌쩍 떠나 다른 세상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변화는 일순간에 일어났다.
테이프가 끝나고 나는 눈을 떴다. 머리가 축축했다. 손가락으로 훑어 본 다음에야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짭짤한 맛이 났고, 땀이 흘러든 눈이 따가웠다. 몸을 굽어보니 스웨터와 청바지에 땀방울이 떨어진 자국이 나 있었다. 실내 온도는 20도 정도였는데, 창문 쪽은 웃풍 때문에 온도가 더 낮았다. 다들 쌀쌀해서 웃옷을 걸치고 후드를 쓴 상태였다. 그런데 나는 오래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옷에 땀이 배어 있었다.
강사가 다가와서 물었다. 괜찮으냐고. 아프거나 열이 나지는 않느냐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몸에서 열이 나는 것에 대한, 그리고 숨을 들이쉴 때 어떻게 새로운기energy를 얻고, 숨을 내쉴 때는 또 어떻게 묵은 기를 내보내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짐짓 귀를 기울였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까지 5킬로미터 거리인데, 젖은 옷을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어떻게 집에 가나 싶은 걱정 탓이었다.
이튿날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이 좋았다. 호흡법 강좌에서 들은 대로였다. 잠도 푹 잤다. 인생의 자잘한 일들이 더는 나를 갈구지 못했다. 어깨와 목 결림도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야 고요한 느낌이 잦아들었다. 인생의 자잘한 일들이 지나서야 고요한 느낌이 잦아들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고풍의 집에서 한 시간 동안 다리를 꼬고 앉아 그저 숨쉬기를 한 것뿐인데, 어떻게 그처럼 심오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다음 주에 다시 호흡 교실을 찾았다. 같은 경험을 했고, 땀은 줄었다. 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조차 함구한 채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그렇게 수년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집수리를 했고, 악전고투의 삶에서 벗어났고, 호흡에 관한 의문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나는 그리스로 날아가 프리다이빙에 관한 책을 썼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프리다이빙은 무호흡으로 수중 활동을 하는 것인데, 한 번의 호흡으로 수십 미터를 내려갔다 올라온다. 다이빙 도중 짬짬이 수십 명의 전문가들과 면담을 하면서, 다이버들이 무엇을 하고 왜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했다. 또한 소프트웨어 공학자, 광고업계 임원, 생물학자, 의사 등 수더분해 보이는 사람들이 한 번에 12분 동안이나 잠수할 수 있을 만큼 어떻게 몸을 단련 하는지, 과학자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수심까지 어떻게 잠수를 하는지 따위를 알고 싶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수영장 물속에 잠수하면 3미터도 내려가지 못하고 몇 초 만에 귀가 아파서 바로 올라온다. 프리다이버들 말에 따르면 그들도 예전에는 '대다수 사람들'이었다. 변화 여부는 훈련에 달려 있었다. 그들은 폐를 달래서 더 열심히 일하게 했고 폐활량을 늘렸다. 그들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건강만 허락하면 누구나 훈련을 거쳐 30미터, 60미터, 심지어 90미터까지도 잠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몇이고 몸무게가 얼마인지, 유전자 구성이 어떤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프리다이빙을 하려면 호흡법만 익히면 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에게 숨쉬기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고, 그냥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숨쉬기는 초인에 가까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매커니즘, 어떤 보약, 어떤 힘이었다.
8분 이상 숨을 참고 90미터까지 잠수한 적이 있는 한 여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음식의 가짓수만큼이나 많은 호흡법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호흡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다 다를 거예요." 또 다른 다이버의 말에 따르면, 호흡하기에 따라 우리 뇌에 영양을 공급할 수도 있고, 뉴런을 죽일 수도 있고, 우리를 건강하게 할 수도 있고, 죽음을 재촉할 수도 있다.
그들은 폐의 크기를 30퍼센트 이상 늘리는 호흡법에 대한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저 숨을 들이쉬는 방식만 바꿈으로써 체중을 몇 킬로그램 줄인 인도 의사 이야기, 독을 지닌 대장균을 주입한 후 리드미컬한 패턴의 호흡으로 면역 체계를 자극해 불과 몇 분 만에 독을 제거한 또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호흡으로 암세포를 줄인 여성들과, 몇 시간 동안 눈밭에 알몸으로 앉아 둥그렇게 주위의 눈을 녹인 승려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었다.
프리다이빙 탐구 와중의 휴식 시간에는 보통 밤늦도록 관련 문헌을 폭넓게 읽었다. 의식적인 호흡이 바다에서 물질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누군가는 연구하지 않았을까? 체중 감량과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되는 호흡법을 활용한 프리다이버들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누군가는 제시하지 않았을까?
나는 값진 도서관 자료를 발견했다. 문제는 그것이 수백 년, 때로 수천 년 전 자료라는 것이었다. 기원전 4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 문헌 일곱 권은 전적으로 호흡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가 어떻게 호흡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치유되고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를 기술하고 있었다. 이들 문헌에는 어떻게 숨을 조절하고, 늦추고, 참고, 삼킬 것인가에 관한 상세한 지침이 담겨 있다. 그보다 더 일찍이 힌두교도들은 숨과 영혼을 하나로 보고, 호흡의 조화를 통해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지키는 정교한 실천 방법을 기술해 놓았다. 그 후 불교도들은 호흡법을 통해 생명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의식의 차원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 모든 문화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흡은 강력한 약이었다.
고대의 도교 경전에 이런 말이 나온다. “따라서 생명을 북돋고자 하는 도인은 그 형form을 온전케 하고 호흡을 북돋는다. 이는 명명백백하지 아니한가?”
그다지 명명백백하지 않다. 나는 폐와 기도를 다루는 호흡기학(호흡기내과)pulmonology의 최신 연구 가운데서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거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호흡법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인터뷰한 많은 의사와 연구자, 과학자들 모두가 그런 관점을 지지했다. 1분에 호흡을 10회 하든 20회 하든, 숨을 쉬는 통로가 입이든 코든 호흡 관이든 하등 다를 게 없다고들 생각했다. 공기만 주입되면 나머지는 몸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전에 진료받은 과정을 한번 돌이켜 보면, 호흡에 대한 현대 의학 전문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의사는 혈압과 맥박, 체온을 잰 다음 심장과 폐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가슴에 청진기를 댔을 것이다. 그리고 다이어트 여부와 섭취하고 있는 비타민, 작업 스트레스 따위를 물었을 것이다.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문제가 있는가? 잠은 잘 자는가? 계절성 알레르기는 없나? 천식은? 두통은? 그러나 1분에 호흡을 몇 번 하는지 따위는 결코 묻지 않았을 것이다. 혈류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균형을 확인했을 리도 없다. 호흡법과 호흡의 질 따위는 의사의 메뉴에 없다.
현실이 그렇지만, 프리다이버들의 말과 고대 문헌에 따르면 호흡법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호흡법은 그토록 중요하면서도 왜 그토록 홀대당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계속 파고 들어갔고, 서서히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최근에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내가 문헌을 섭렵하고 프리다이버나 초호흡을 하는 사람super-breather(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사람-옮긴이)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하버드대학과 스탠퍼드대학, 기타 유명 기관의 호흡기 학자들은 정말 뜨악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실험실에서 진행되지 않았다. 호흡기 학자들은 폐의 특정 질병, 즉 폐의 허탈, 폐암, 폐기종 등을 주로 연구한다. 어느 베테랑 호흡기 학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어요.”
아니, 막상 알고 보니 이 호흡 연구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고대 유적의 진흙 파편, 치과의 안락한 의자, 그리고 정신병원의 고무로 둘러싼 방에서 말이다. 거긴 생물학적 기능에 대한 최첨단 연구를 기대할 만한 곳들이 아니다.
이들 과학자 가운데 호흡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몇 명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긴 진화 과정을 거치며 호흡 능력에 변화가 생겼는데, 산업사회가 열린 이후 우리의 호흡 방식이 현저히 나빠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도 실은 그들이 발견했다기보다 호흡이 그들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가운데 90퍼센트가, 아마 나 자신이나 독자도,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올바른 호흡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연구에 나섰으니 말이다. 만성질환의 목록이 하염없이 늘어난 것, 그리고 그 질환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모두 그릇된 호흡 탓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차렸다.
좀 더 고무적인 관점에서, 이 연구자들 중 일부는 우리가 들이쉬고 내쉬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현대의 수많은 만성병(천식, 불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건선, 기타 다수의 질환)이 완화되거나 역으로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또한 증명해 내고 있었다.
그런 연구는 서양의학에 대한 오랜 믿음을 전복시키고 있었다. 그렇다. 호흡을 달리하면 진정 우리의 몸무게도, 전반적인 건강 상태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 호흡 방법에 따라 우리 폐의 크기와 기능이 진정으로 달라진다. 그렇다. 호흡을 통해 우리는 신경계를 해킹해서 면역 반응을 조절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숨 쉬는 방법을 바꾸면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잘 먹는지, 얼마나 운동을 많이 하는지, 유전자의 회복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얼마나 날씬하고 얼마나 젊고 얼마나 똑똑한지 따위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올바른 호흡을 하지 않는 한 그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된 것이다.
바로 그러한 사실을 소수의 연구자들은 발견했다. 건강을 떠받치는 기둥, 그 잃어버린 기둥이 바로 호흡이라는 것을. 바로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 책은 잃어버린 호흡의 기술과 과학에 대한 과학적인 모험이다. 보통 사람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3초인데, 이때마다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탐구한다. 호흡을 할 때마다 유입되는 수많은 공기 분자가 우리의 뼈와 근육, 혈액, 뇌, 오장육부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그리고 이 미세한 분자들이 다음 날,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 그리고 수십 년 후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새로운 과학 이야기를 이제 펼쳐 보일 것이다.
내가 이것을 “잃어버린 기술”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수많은 새로운 발견이 전혀 새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탐구하게 될 기술들은 대부분 수백 년, 때로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다. 이들 기술은 여러 문화권에서 여러 시기에 걸쳐 창조되고, 문서화되고, 잊히고, 발견되었다가 다시 잊혔다. 까마득히 오랜 세월 동안.
이 분야의 초기 개척자들은 대부분 과학자가 아니었다. 호흡의 힘을 우연히 발견한 이들을 나는 “펄모노트pulmonaut”(‘폐’, ‘호흡기’를 뜻하는 접두사 pulmo-와 ‘탐험가’를 뜻하는 접미사 -naut를 결합한 조어로 ‘호흡 탐험가’라는 뜻-옮긴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은 일종의 돌팔이 의사였다. 남북전쟁 당시의 외과 의사, 프랑스의 미용사, 무정부주의를 노래한 오페라 가수, 인도의 신비주의자, 과민한 수영 코치, 근엄한 표정의 우크라이나 심장병 전문의, 체코슬로바키아의 올림픽 선수, 노스캐롤라이나 합창단 지휘자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펄모노트 가운데 살아생전에 명성을 얻거나 존경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의 연구는 사망과 함께 묻힌 뒤 잊혔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의 기법이 재발견되어 과학적으로 시험되고 증명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여간 다행이 아니다. 한때 비주류 의술이었다가 금세 잊히고 만 이 연구 결실 덕분에 이제 인체의 잠재력이 재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숨 쉬는 방법을 배우는 게 왜 필요하단 말인가? 나는 평생 숨 쉬며 살아왔다.
독자가 제기할 법한 이런 의문은 내가 직접 연구에 뛰어든 이후 계속 뇌리에 떠올랐다. 우리는 위험하게도 숨쉬기를 수동적인 단순 행위라고 가정한다. 숨을 쉬면 살아 있는 것이고, 숨이 멈추면 죽은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호흡은 그런 이진법이 아니다. 이 주제에 직접 뛰어들어 몰입하면 할수록 나는 그런 기본 진리를 선각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더욱 많은 시간을 바치게 되었다.
대부분의 나이 든 사람들처럼 나 역시 이런저런 호흡기 질환을 앓아 왔다. 몇 년 전 호흡 교실에 참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알레르기 처방 약과 흡입기, 보충제 혼합물, 또는 식이요법 등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게 치료제다운 치료제를 처음 안겨 준 것은 신세대 펄모노트들이었다. 그 후 그들은 치료제 이상의 것을 내게 안겨 주었다.
보통의 독자라면 이 책의 현재 쪽부터 마지막 쪽을 읽을 때까지 줄잡아 1만 번의 호흡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나름의 깨달음을 제대로 전달했다면, 지금부터 독자는 새로 호흡을 할 때마다 호흡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호흡을 가장 잘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이다. 호흡을 1분에 20회 하든 10회 하든, 입으로 하든 코로 하든, 기관절개술 개구부로 하든 호흡 관으로 하든 다 마찬가지라고 알고들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 호흡을 하는가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지금부터 독자가 1,000번째 호흡을 할 무렵이면, 치아가 가지런하지 않고 고질적으로 들쭉날쭉한 동물은 오로지 오늘날의 인간뿐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 그리고 그것이 호흡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호흡 능력이 얼마나 한심해졌는지, 그리고 우리의 동굴 속 조상들은 왜 코를 골지 않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호흡하는지, 다시 말해 입으로 호흡하는지 코로 호흡하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오랜 믿음이 정말 옳은가를 시험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중년의 두 남자가 스탠퍼드대학에서 20일간 선구적이고 자학적인 실험을 하는 현장을 엿보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것을 알게 될 텐데, 특히 허구한 날 코를 고는 독자라면 다음 호흡을 할 무렵이면 치료법을 찾을 것이다.
3,000번째 호흡을 할 무렵에는, 기본적인 회복 호흡법을 여러 가지 배우게 될 것이다. 느리고 긴 이 호흡 기술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 늙었거나 젊거나,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간에. 이 기술들은 힌두교와 불교, 기독교, 기타 온갖 종교에서 수천 년 동안 행해져 왔지만, 이를 통해 혈압을 낮추고,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고, 신경계의 균형을 바로잡는 방법을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최근 들어서다.
6,000번째 호흡을 할 무렵에는, 진지하고 의식적인 호흡의 세계로 넘어갈 것이다. 입과 코를 지나 더욱 깊이 폐로 들어가는 여행을 하고 20세기 중반의 한 펄모노트를 만날 텐데, 그는 날숨의 힘을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의 폐기종을 치료했고 올림픽 단거리선수들을 훈련시켜 금메달을 안겨 주었다.
8,000번째 호흡을 할 무렵에는, 많은 것 가운데 특히 신경계를 가볍게 자극하기 위해 훨씬 더 깊이 몸속으로 숨을 들이쉬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는 과호흡overbreathing의 힘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여러 펄모노트를 만날 텐데, 그들은 호흡을 이용해 심한 척추측만증(곱사등)과 자가면역질환을 바로잡기도 하고, 영하의 온도에서 체온을 과열시켜 주위의 눈을 녹이기도 했다. 황당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0년 전 빅토리아풍의 집에서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연구 도중 내가 몸소 그 배움에 뛰어든 모습도 만나 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1만 번째 호흡을 할 무렵에는, 폐로 들어가는 공기가 삶의 매 순간마다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고, 삶의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까지 어떻게 그 잠재력을 최대한 이용할 것인지 배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진화와 의학사, 생화학, 생리학, 물리학, 운동 지구력은 물론이고 그 밖에도 많은 것을 탐구할 것이다. 그러나 주로 탐구하게 될 것은 바로 독자 자신이다.
평균의 법칙에 따르면 사람은 일생 동안 6억 7,000만 번의 호흡을 한다(평균 수명을 70세로 계산할 경우-옮긴이). 독자 가운데 아직 절반의 호흡도 못다 한 이들이 있겠지만, 어쩌면 6억 6,900만 번째 숨을 삼키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라도 몇백만 번의 기회 정도는 더 붙잡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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