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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미생물과의 끊임없는 경쟁

우리는미생물 2023. 4. 3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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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생명과학은 대장균과 같은 미생물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왔다.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의 발견을 통해 미생물 감염으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구했으며, 다양한 항생제의 개발을 통해 인간에게 병원성 미생물 감염이라는 심각한 위협은 거의 잊어져가고 있다. 현재는 미생물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다양한 생명과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나 조류독감과 같은 항생제가 작용하지 않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나 암과 같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잊혀져가던 미생물 감염의 위협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소위 ‘항생제 내성’을 지닌 미생물의 출현과 번성 때문이다. 결핵이나 말라리아와 같이 거의 잊어졌던 감염성 질병이 항생제 내성 균주가 등장하면서 여러 가지 항생제를 투여해도 치료되지 않고, 결국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흔치않게 나타나고 있다.

미생물도 생명체며, 자손을 번식하고자 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항생제란 인간에게는 없는 미생물 특이적인 생명현상을 억제함으로써 미생물이 살아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항생제의 작용을 피해가거나 무력화시키는 변형 미생물의 출현은 필연적이어서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필요하다.

2002년 우리나라 항생제 내성균의 예를 살펴보면, 장염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항생제인 암피실린에 대해서 97%의 장구균이 내성을 나타냈다. 식중독의 주된 원인이 되는 포도상구균 역시 약 75%가 메티실린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제3세대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반코마이신의 경우에도 33%가 내성을 나타낸다는 보고는 매우 충격적이다.

미생물이 항생제 내성을 가지게 되는 기작에는 각 항생제에 미생물 특이적인 기작도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미생물의 생명현상인 ‘바이오필름’ 형성이 주된 원인이 될 수 있다. 바이오필름이란 세균이 감염된 부분에서 나타나며, 폴리머 기질로 감싸인 세균에 의해 형성된 점액질의 세균 복합체를 이루는 균막으로 생물막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미국국립보건연구소(NIH)의 2002년 보고서에서는 병원성 미생물의 80% 이상이 항생제 내성을 포함한 자기 자신의 방어기작으로 바이오필름 형성을 이용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고령화에 따른 자연면역체계의 약화와 같은 현상으로 인해 미생물은 폐나 장과 같은 기관에서 바이오필름을 형성하며 항생제의 침투로부터 보호받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병원성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항생제라는 무기를 사용해 미생물의 생장을 억제해 왔다. 항생제 내성균주가 출현하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식의 반복적인 과정을 지속해 오고 있다. 이 과정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미생물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생물을 죽이려는 현재의 항생제와 다르게, 인간에게는 없지만 미생물의 상호작용에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물질을 발견해 이용한다면 병원성 미생물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해법이 될 지도 모른다. 미생물 자신이 이런 물질을 상호작용인자로 이용하기 때문에 내성문제가 없고, 인간에게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신약으로 인한 부작용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미생물에게 바이오필름을 해체시키거나 감염된 곳으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신호전달물질을 개발한다면 인간의 자연면역체계를 활성화하거나 기존의 항생제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쿼럼센싱(Quorum Sensing)’이란 미생물이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스스로 상호작용인자를 분비하고, 이 분비된 인자를 다른 미생물이 인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쿼럼으로 오토인듀서-1(AI-1)과 오토인듀서-2(AI-2)가 있다. 오토인듀서는 미생물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 대사과정의 산물로써 생장 환경의 영양 상태에 따라 합성하거나 바깥으로 분비해 미생물 간의 상호작용을 유발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미생물의 운동성을 조절해 바이오필름 형성을 유도하거나(대부분의 미생물) 억제한다(콜레라균).

AI-1은 미생물종에 따라 구조적으로 조금씩 다르다. 또한 종 특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AI-1을 이용해 다양한 병원성 미생물 감염을 치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화학적으로 규명된 AI-2는 미생물 종에 관계없이 공통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네이처’ 2002년에 발표됐다. AI-2를 합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LuxS’ 단백질이 대부분의 모든 미생물에 존재함이 밝혀진 것이다. 미생물의 ‘만국공통어’인 AI-2의 신호전달을 조절해 바이오필름 형성과 같은 모든 미생물의 생물학적 행동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이다.

쿼럼센싱 기작 및 바이오필름 형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AI-2의 신호전달을 조절하는 물질을 개발한다면 내성이 생길 수 없는 궁극적인 항생제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기존 항생제와 함께 사용해 항생제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도 있다. 또한 AI-2의 신호전달 조절물질을 이용하면 미생물을 죽이지 않고도 바이오필름 제거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미생물 공정과 같은 다양한 미생물 관련 산업에서도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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